보존자원인 제주 지하수로 만드는 '제주삼다수'가 어떻게 생산업체 몇몇 직원들의 뒷주머니를 채우는 데 이용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막상 내막을 들여다보면, 일부 직원이 제주삼다수를 빼돌리는 수법은 매우 간단해 허망하기까지 하다.
13일 제주도개발공사에 따르면 자체 감사 결과 올해 직원 6명이 3차례에 걸쳐 2ℓ 기준 6천912병을 적재한 12 팔레트(400만 원 상당)를 무단 반출했다.
이들 직원이 제주삼다수를 빼돌리는 일부 장면은 제주도개발공사 공장 내 폐쇄회로(CC) TV에도 담겨있다.
이들은 일부 제품에 유통 과정을 추적하는 전자식 QR 코드를 찍지 않고 남겨뒀다가 무단 반출했다. 생산된 제주삼다수에 단지 QR 코드를 찍지 않는 수법으로 관리 대상 물량에서 빼돌려지는 셈이다.
또 제주삼다수 불량품 남겨뒀다가 무단 반출하는 수법을 쓰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도개발공사는 각 제조 공정에서 취수량 대비 생산량을 확인하고 또 생산량 대비 출고량을 확인하고 있다.
다만 생산 과정에서 파손 처리돼 폐기되는 물량 일부를 사내 음용수나 홍보 물량으로 돌려왔고, 이러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삼다수 물량들이 무단 반출에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익명의 제보자는 언론에 "불량품 처리 삼다수를 빼돌리려고 병을 쌓아 올리는 팔레트를 일부러 파손해 불량품 처리한 후 무단 반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정학 제주도개발공사 사장은 이와 관련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고의로 불량 처리한 것에 대한 질문에 "자체 조사에서는 그런 점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품 빼돌리기에는 생산직 3명, 물류직 1명, 설비·자재팀 1명, 사회공헌팀 1명 등 다양한 부서의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공모했다. 이들 중에는 간부급(과장)도 1명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도개발공사는 직원들의 제품 빼돌리기가 내부 공익 제보를 통해 세간에 알려지자 그제야 자체 감사를 해 4명을 직위해제하고, 6명 모두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김정학 사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장 내 CCTV 녹화영상 보관을 종전 2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3곳에 분산된 관제 기능도 하나로 통합해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며 도민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미 훨씬 많은 제품을 빼돌린 사건이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해 3∼4월께 대리급 직원 A씨가 배송지에 공식 거래처가 아닌 다른 곳을 적어 넣는 방식으로 8천만원 상당의 삼다수를 빼돌렸다.
A씨가 이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 빼돌린 삼다수의 양은 198 팔레트에 이른다. 1 팔레트에는 2ℓ들이 삼다수 576병이 들어간다.
제주도개발공사 임원들은 기자회견 당시 이 같은 사실은 숨기고 있다가 지난 12일 제주도의회의 특별 업무보고 때 의원들이 다그치자 슬며시 털어놨다.
제주도개발공사는 A씨를 파면하고, 경찰에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이쯤 되자 사장이 제시한 재발 방지책이 헛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제주도가 100% 출자한 공기업인 제주도개발공사에서의 제품 빼돌리기는 10년 전인 2012년에도 있었다.
당시 제주도 내 공급용 제주삼다수 3만5천t을 도 외로 빼돌린 사건이 발생했고, 관련 임원과 유통업자 등 33명이 경찰 수사를 받았다.
다만 당시에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보존자원인 지하수 반출 행위를 금지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위반 혐의를 적용, 모두 불기소됐다.
제주도개발공사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2개 취수장에서 하루 취수 허가량 4천600t의 약 74%인 3천100t가량의 지하수를 퍼 올려 제주삼다수를 생산하고 있다.
제주삼다수는 현재 광동제약과 LG생활건강을 통해 주로 유통된다. 다만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롯데슈퍼 등 대형 슈퍼마켓(SSM)에는 제주도개발공사가 직접 공급하고 있다.
제주도개발공사는 제주의 보존자원인 지하수를 퍼 올려 먹는 물을 생산하고 시중에 독점 판매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국공항도 사기업으로 유일하게 제주 지하수로 먹는 물인 '제주퓨어워터'를 만들지만, 지하수 고갈을 우려해 항공 운항과 관련해서만 이용하도록 하고 시중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제주도개발공사는 화산섬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바탕으로 국내 먹는샘물 시장의 부동의 1위 브랜드 제주삼다수를 육성했지만, 생산과 유통에 대한 관리·감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셈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 경찰 조사에서 무단 반출된 제품의 시중 유통 여부, 직원들의 추가 범행 및 다른 직원의 가담 여부, 외부인의 개입 의혹 등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외양간을 고치기는 하는 것인지조차 의문이다.
사장이 내놓은 관제 기능 통합이나 CCTV 녹화 영상 보관기간 연장만으로 가능했다면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도 따져봐야 할 일이다.
제주삼다수가 먹는물관리법에 따라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지만, 이 기회에 외부 전문기관 등을 통해 생산 관리와 유통 관리의 문제점을 다시 철저히 점검해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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