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영 칼럼] 현대의학의 영웅과 위대한 발견(6) 윌리엄 스튜어트 할스테드
[오순영 칼럼] 현대의학의 영웅과 위대한 발견(6) 윌리엄 스튜어트 할스테드
  • 오순영 칼럼니스트(가정의학과 전문의)
    오순영 칼럼니스트(가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4.10.0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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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을 지닌 천재 외과의사 그리고 수술 장갑"  

흙수저로 태어나든 금수저로 태어나든 천재들이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은 운명이다. 할스테드는 1852년 뉴욕 맨해튼의 5번가 대저택에서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운동을 좋아해서 중학생 때 풋볼 팀 주장까지 하였던 이 아이는 그레이 아나토미(해부학책)와 달톤의 생리학에 심취하여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컬럼비아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후 외과의 선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를 2년 넘게 돌아다니며 대가들의 수술을 참관하였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공부였다.

윌리엄 할스테드 1852-1922

당시 미국의 외과는 유럽에 비하면 떨어지는 수준이어서 의사의 실력보다 환자의 운에 수술 성패가 달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여 수술실을 도살장으로 비유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할스테드는 도살에 불과했던 수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섬세하고, 부드럽고, 정중하게 수술을 하였다. 수술로 찢진 피부와 꺼내진 장기를 의식을 가진 사람처럼 예의 바르게 다루었다. 출혈을 멎게 하는 섬세한 도구, 감염을 막는 소독, 통증을 조절하는 마취가 그의 수술에서는 조화롭게 이루어졌는데 한 인턴은 그의 수술을 보고 “불안한 순간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담석증에 의한 담낭염으로 복막염이 된 자신의 어머니를 저택의 주방 테이블에서 응급수술을 하여 살렸는데 그것은 최초의 담낭절제수술이었다. 여동생이 출산 중에 하혈을 많이 하여 쇼크에 빠지자 자신의 팔에서 피를 뽑아 수혈을 하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이것은 미국에서 최초의 응급 수혈이었다.

1884년 10월, 자신만만하고 부하 직원에게는 혹독했던 그에게 시련이 닥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카를 콜러라는 안과의사가 코카인으로 국소마취를 하여 각막 수술을 했다는 논문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논문을 읽고 코카인을 구해 자신의 몸에 실험을 하였는데, 곧바로 중독이 되고 말았다. 코카인을 주사하면 주사한 곳에 국소 마취가 일어나며, 고무줄로 묶으면 오래 동안 마취가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부분 마취뿐 아니라 척추 마취까지 고안하게 되었지만, 자신은 더욱 코카인에 중독되어 삶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코카인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3개월 동안 요트 여행을 가기도 했고,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였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성격은 더욱 괴팍해져 갔고, 무단결근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의 천재적인 수술 실력에 대한 신뢰는 여전해서 그와 절친한 병리학자 윌리엄 웰치는 그에게 볼티모어에서 새로 개원하는 병원의 외과 교수를 제안하였다. 그 병원이 존스 홉킨스 병원이었다. 그는 코카인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조건을 제시하였지만, 할스테드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단지 코카인에서 모르핀으로 갈아탔을 뿐이었다.

존스 홉킨스 병원은 존스 홉킨스라는 사업가가 일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모은 돈을 기부하여 만든 병원(1876년)으로 현재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병원으로 발전하였다. 외과의 윌리엄 할스테드, 병리학의 윌리엄 웰치, 산부인과의 하워드 켈리, 내과의 윌리엄 오슬러가 존스 홉킨스의 4대 창립멤버인데 이들의 초상화는 웰치 의학도서관에 지금도 걸려 있다.

The Four Doctors 1906  
The painting of the Four Doctors was of the lead teaching physicians of the Johns Hopkins School of Medicine. They were: Dr. William H. Welch, the first Dean of the school, Dr. William Osler, Dr. William S. Halsted and Dr. Howard A. Kelly.  

할스테드는 존스 홉킨스에서 외과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의학사에 남을 세 가지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첫 번째는 처음으로 수련의 제도를 만들어 정착시킨 것이었다. 수련과정 동안 적은 급료를 받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입주 의사를 레지던트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외과영역에만 한정되었지만, 나중에 전과로 확장되었다. 레지던트 제도는 전 세계 의과 대학이 도입한 표준 수련제도가 되었다. 두 번째 업적은 근치적 유방절제술(radical mastectomy)을 하여 여성 유방암 수술의 표준을 만든 것이었다. 이 수술은 유방암치료의 가장 기본적인 수술로 80년 동안 군림하였다. 세 번째 업적은 수술용 장갑을 만든 것이다. 오늘날 의료용 장갑은 모두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수술용 장갑에는 로맨틱한 사연이 있다. 그의 수술실에는 캐롤라인 햄튼(1861년 11월 20일 ~ 1922년 11월 27일)이라는 아리따운 간호사가 있었다. 그녀는 미국 남북 전쟁 때 남부 연합군 장군으로 이름을 떨친 웨이드 햄튼 장군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남부 부호 가문 여성으로서의 관습적인 삶을 거부하고 간호사가 되기 위해 남부를 떠나 뉴욕으로 가는 놀라운 결정을 하였다. 자격증을 따고 볼티모어의 병원에 취직을 하였는데 재능을 발휘해 곧 외과 수석 간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9살 연상인 할스테드를 만났다.

할스테드는 매우 까다롭게 손 소독을 요구했기 때문에 햄튼의 손과 팔은 성할 날이 없었다. 할스테드는 햄튼을 비정상적으로 효율적인 수술실 조수(unusually efficient operating room assistant)로 부를 만큼 아꼈다. 그들이 다정하게 장난치는 모습이 종종 직원들의 눈에 뜨이기도 하였다. 그는 그녀가 수술실을 떠날까 봐 두려워하였는데 손과 팔의 발적과 쓰라림으로 더 이상 수술실에서 일할 수 없게 된 그녀는 그에게 마침내 사임을 통보하고 말았다.

할스테드는 궁리 끝에 그녀의 손과 팔을 석고로 정교하게 본을 떠서 고무 제조사인 굿이어에 보내 가장 얇아야 하고, 재사용이 가능하며, 유연한 장갑 제작을 의뢰하였다. 굿이어사에서 보내온 장갑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햄튼은 장갑을 끼고 손과 팔의 상처 없이 할스테드의 수술을 보조할 수 있었다.  그해 1890년 할스테드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사랑을 확인한 그녀는 흔쾌히 청혼을 받아들였다.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것은 결혼만큼은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것인데 이들의 결혼도 그러해서 북부 거상 집안과 남부 부유한 농장주 간의 결합이었다.

수술 장갑은 햄튼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었다. 환자들에게도 유익해서 감염률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할스테드의 레지던트 중 한 명인 조세프 콜트는 수술 장갑을 착용 후 감염률이 17%에서 2%로 떨어졌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수술 장갑은 존 홉킨스 병원 전체로, 다시 미국과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다. 수술용 장갑은 사랑이 만든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결과물이었다.

1922년 여름 할스테드는 담석증에 의한 담낭염으로 존스 홉킨스 병원에 입원하였다. 모르핀 중독자였기 때문에 고통을 참기 위해 많은 모르핀을 투여하여 수술 후 경과가 좋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훈련시킨 두 명의 수석 레지던트의 보살핌을 받으며 70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자신의 직장에서 사망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최초로 담낭 절제술을 했던 그리고 최초로 자신의 피로 응급 수혈을 했던 그가 수석 레지던트의 수혈을 받으며 담낭염으로 사망한 것이다. 모든 아이러니는 이처럼 비극이다. 햄튼은 깊은 슬픔에 잠겨 남편 사망 후 석 달도 안 되어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할스테드 부부가 결혼 생활을 했던 아름답고 웅장한 하이 햄튼의 농장(2200 에이커)은 1991년 국가 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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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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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과 전문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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