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4월초 공군 중위제대 3개월 전에 KIST에 입소 하자마자 POSCO의 포항종합제철 소 건설계획의 총책임자인 김재관 박사팀에 합류하여 사업타당성 연구(feasibility study) 의 실무책임을 맡았다. 당시 포항제철건설에 대한 해외차관단 KISA의 검토 결과 왜소한 내 수 규모로 차관 제공이 어렵다는 결정에 따라, KIST로 하여금 다시 연구하라는 청와대의 급 박한 지시로 필자가 예기치 않게 스카웃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내수 부족분을 과연 수출할 수 있을까?’ 의 관점에서 고심하다 중력법칙(gravity law)을 원용한 철강수출계량모델(Steel Export Quantitative Model)을 도출하여 사업타당성을 입증하였고 1970년부터 년생산규모 103만톤 포항제철공장을 건설하여 1973년부터 POSCO가 철강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포항공장건설이 한창이던 1971년에 제2의 광양제철소 타당성 연구의 총책임자 로 300만 톤 규모로 시작하여 최종 1200만톤 규모의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수립하 였고 정부는 이에 따라 1972년 국영형태의 회사를 발족시켰으나 1973년 1차 오일쇼크 로 순연되다가 후에 POSCO에 흡수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의지를 살려 박태준 회장이 철강산업을 드라이브하자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하여 철다소비(鐵多所費) 중화학 산업들은 대부분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중화학산업이 본궤도에 진입하여 순항하는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경제사회 이슈 중 하나 는 통신서비스에 대한 엄청난 적체수요(積滯需要 backlog demand)를 빨리 해소시키는 일이었다. 마침 KIST가 독자적으로 사설교환시스템을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기에 그 적체수요를 해소시키려고 벨기에의 ITT 회사 선진 교환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하 고 그 도입기술을 개량⋅발전시킬 주체로 1977년 전자통신연구소(ETRI)를 출범시켰다. 이때 필자는 ETRI의 창설 멤버로 기획실장과 통신경제실장을 맡아 도입기술을 소화⋅개 량하는 일과 고유한 전자통신 장기발전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한국통신발전의 명괘한 청사진이 마련되고 EPB 기업예산과(강봉균 과장)의 이해와 협조 로 ETRI가 원하는 수준의 연구예산이 확보되면서 ETRI는 급속으로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고, 필자는 1981년에 한양대 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박정희 정부에서는 디지털(digitalization) 혁명을 맞고 있는 통신 인프라(infrastructure)를 현 대화하기 위해 1984년에 체신부의 정책기능과 사업운영기능을 분리하여, 사업운영 부문은 공기업으로 한국통신공사(KTA, 현 KT의 전신)를 발족시켰고 체신부 이해욱 기획실장이 초대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KTA는 전기(electrical)통신시스템을 전자(electronic)통신시스템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KTA 발전전략(안) 연구프로젝트를 1987년에 필자에게 의뢰하여 왔다.
KTA 발전전략(안) 연구프로젝트 연구팀은 3부문으로 기업문화는 이화대 이어령 교수팀, 경 영조직은 서울대 곽수일 교수팀, 경영전략은 한양대 교수인 필자가 맡게 되었다. 어떤 특별 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구프로젝트의 순서는 경영전략이 확정된 뒤 그것을 실 행하기 위한 경영조직과 기업문화를 다루는 게 통상의 순서인데 KTA 발전전략(안) 연구프로 젝트의 경우는 기업문화-경영조직-경영전략 순으로 뒤바뀐 것이 좀 이상했다.
일정기간이 지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당시의 그 발표 현장 분위기를 잠시 엿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KTA 간부들과 통신산업계와 관련 학계의 저명 교수들이 참석 한 가운데 이해욱 사장 주제로 발표회가 열렸는데 기업문화를 맡은 이어령 교수가 “작은 소 리도 크게 듣겠습니다” - 라는 그간의 연구를 장황하게 설명하다보니 이해욱 사장도 난처해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경영조직팀에서는 곽수일 교수는 오지도 않고 팀원들 만 왔으니 부득불 필자가 나서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하여 필자가 이어령 교수에게 그만 말 씀하시길 바라며 질문하는 형식으로, - 이 교수님, “작은 소리도 크게 듣겠습니다” 를 강조하시는데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 지, 왜 KTA 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보시는지요 - 하고 말을 던지자 발표장에 찬물을 확 퍼부운 듯 어색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 이제 제가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지금 세계통신은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옮아가는 거대 한 기술혁명을 맞고 있으며 또한 미소양극 체제의 붕괴가 예견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급 변혁의 환경 파고(波高)는 세계통신과 한국통신시스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며 이들이 KTA 에게는 기회(機會) 아니면 위협(威脅)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의 견 지에서 KTA가 성공적인 선발자가 되면 좋겠지만 설령 못 돼더라도 최소한 선진대열에 편승 (便乘)해야 할 묘책을 찾아보고자 하는 자리가 오늘의 이 자리, 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 다, - 하자 참석자의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필자의 식견(識見)에 강한 동조를 보여주었다.
이어서 필자는 설명한 전략적 의미를 지닌 KTA 의 경영전략(안)으로 ATTACK (Advanced Total Telecom Advantage Creating KTA)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는 ‘앞선 통신혁신기술을 통 해 첨단의 유·무선 전자통신시스템으로 경쟁우위를 창출하는 KTA가 되자!’는 전략 슬로건이 었다. KTA는 전사적으로 전략선포식을 거행하고 이를 드라이브하기 시작하였다.
이해욱 사장이 KTA가 글로벌 차원의 Mega Player로 발전하려면 세계적인 컨설팅사의 연구 결과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1988년에 Harvard Business School 마이클 포터(Porter) 교수팀의 Monitor 컨설팅사에 연구프로젝트를 맡겼다고 전하며 연구 결과 발표 때 꼭 참석 하여 의견을 개진(開陳)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몇 개월 후 그들이 보고한 최종 연구 결과에는 전자통신기술의 발전추세나 미소양극 체제의 붕괴가 세계통신에 어떤 충격을 줄것이냐, 등에 대한 고려가 전혀 담겨 있지 않음을 필자가 실랄하게 지적하자 Monitor 사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Harvard Business School 마이클 포터(Porter) 교수팀 연구 결과의 부실은 필자로 하여금 수요측면인 니즈진화(needs evolution)와 공급측면인 니즈맞춤기술/혁신, 두 차원 간의 적응 우수성(adaptive goodness)에 의해 사업성과가 좌우된다는 명제(命題)를 담은 틀을 동태경영 (Dynamic Management)이란 용어로 정의하고 그 이론을 구축하고픈 마음을 일으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때마침 Samsung Group 전략기획본부에서 아무 부담 없이 연구하라며 재정지원을 해 주어 필자는 산업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고, 그 연구 결과를 1990년대 초반에 ‘세계 산업의 주도권 이동원리’와 ‘기업파워(firm power)는 어디에서 오는가?’ 라는 두 권의 저서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발간하였다. 당시 ‘세계 산업주도권의 이동원리’는 삼성 맨 필독 서 10권 중 유일한 국내도서로 선정되었고, ‘기업파워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1995년 출판문 화대상 (전경련 주관)을 받았다.
‘기업파워’라는 개념・용어・정의는 물리학의 파워 개념을 원용하여 기업파워를 ‘기업이 이익 을 캐내는 힘의 능률’로 정의하고, 이를 결정하는 요인을 물리학에서 파워를 구성하는 4가지 요소, 즉 (부피*밀도)*가속도*속도에서 유추하여 [(기업규모*(솔루션적합성, 공정적합성)*혁신* 성장벡터)]로 접근하는 기업파워이론(firm power theory)을 정립하였다.
필자는 1995년 내친김에 기업파워 이론의 이론적 강건성과 실용성을 국제적으로 확인 해보려고 기술과 경제성장과의 관계를 핵심 이슈로 연구하는 신 슘페터리안 (Neo-Schumpeterian)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의 선두주자로 불리던 영국 Sussex 대학교의 Christopher Freeman 교수를 만나서 많은 의견을 나누며 토론하는 기 회를 가졌다. 당시 노벨경제학상 선정 때마다 후보자로 거론되곤 했지만 그의 영역이 주류 경제학 분야가 아니다 보니 그 가능성은 희박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업파워이론에 대한 Freeman 교수의 평가는 다분히 필자를 격려하는 차원으로 느껴졌 다. 그는 기술경제학자로서 국가경제레벨과 산업레벨을 주로 다루다 보니 혁신의 현장 인 기업과 사업레벨을 카버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는데 반하여 필자는 기업레벨과 산업레벨을 동시에 다루는 통합성 그리고 기술혁신과 니즈 진화와의 관계적합성을 성과 의 결정인자(determinant)로 인식하는 이론적 틀과 자연법칙을 논거로 원용하여 보여주 는 이론의 강건함에 있어서 자기는 너무 부족하다며 필자를 격려해 주던 그의 거목다운 일면은 아직도 필자의 뇌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특별히 그가 필자에게 런 던에서 그곳 학교까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했느냐(택시로 약 2시간 소요되며 대중교통 수단은 당시 철도가 있었지만 운행 회수가 너무 적어 대단히 불편했음)는 질문에 Samsung 의 런던 지점에서 Ride를 마련해 주었다는 필자의 말을 듣는 순간 놀라며, 당 신이 누구인데 Samsung이 … 하며 필자에 대한 정중함을 내보이던 그의 행동에서 그 당시 Samsung이 영국에서 어떻게 인지되고 있었는지가 필자에게 확연히 전해져 왔다.
1973년 POSCO의 포항제철소 가동을 시발로 20여년간 철다소비 산업을 비롯한 중화학 산업이 순항하며 잘 진행되어 오다가 1997년 IMF 외환사태가 터지면서 한국경제는 국 내 30대 재벌사의 반(半)이 파산하는 초유의 대파국(大破局)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그 후 어떻게 IMF 외환사태가 극복될 수 있었을까? 이 대목에 대해서는 사실에 입각한 논거가 분명한 해법을 밝혀야 할 것이다. 지금도 사이비(似而非) 전문가들이 국 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혼선을 야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가 금모으기 운동 을 잘 벌려서 쉽게 극복했다고 자화자찬하는 특정집단이 있는가 하면 또는 수출기업들 이 피나는 경영쇄신을 통해 극복했다는 부류도 있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에 대해 대학 교 부설 경제경영연구소와 경제경영 전문연구기관에서 연구한 수편의 연구보고서가 있 었는데도 IMF 외환위기의 본질과 그 극복해법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미흡한 것들 뿐 이었던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가 극복된 어느 해인가 필자는 KAIST에서 중견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특 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강의에서 IMF 외환위기 문제를 다루어 보았다. IMF 외환위기는 달러($) 부족에서 온 것이므로 달러($)가 있어야만 위기가 극복될 수가 있다고 본다면, 어떤 형태로든 IMF가 국제금융투자자와 한통속이었구나, - 하는 추론을 하게 되는데 이런 추론은 당시 외환위기가 한국에서만 터진 게 아니고 태국, 말레시아 에서도 동시에 터진 현상은 이런 추론을 더욱 굳히게 해 준다. 이들 국가들이 공통적으 로 개발도상국 단계를 지나 선진후발국으로 진입하려는 수준에서 일정량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또한 각국마다 우량기업체들도 갖고 있었던 것이 글로벌 금융투기꾼 들에게는 좋은 먹이감이 되었던 것이다. 고금리(高金利) 작전을 통해 IMF가 월가(Wall Street) 금융투기꾼들과 결탁하여 한국과 동남아에서 일으킨 재정위기(financial crisis)의 본질을 필자는 이렇게 보고 있다.
그런데 IMF 와 국제금융투기꾼에게 당한 나라 중에서 한국이 제일 먼저 IMF 빚을 갚게 된 사유(事由)는 무엇이었을까? 금모우기, 국민의 단결정신과 애국심, 대기업의 과감한 경영쇄신들도 다소 도음이 되었겠지만 이런 것들로 과연 극복이 되었을까? - 필자는 IMF가 취한 고금리 작전으로 저환율이 고환율로 현실화되는 바람에 수출지향의 한국경 제는 쉽게 IMF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환율이 1$:800원에서 1$:1300-1400원으로 현실화되자 30대 재벌사중에서 내수위주로 재미를 보아왔던 15개사는 파산(破産)했지만 수출위주의 15개는 달러($) 벼락을 맞게 되 었던 것이다. 달러($) 벼락을 맞은 수출위주의 재벌사들은 그 여유자금을 R&D에 투자함 으로서 초(超)기술강국으로 한국의 위상을 급부상시키는 동력을 갖추게 되었다. IMF 위기에서 살아남은 수출위주의 재벌기업들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간의 반(反)기업정서 속에서도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한국경제를 대도약시키는 역활자가 되었다.
필자는 디지털 기술혁명(digitalization revolution)의 심화와 미소양극 체제의 붕괴로 세계경 제의 추세(trend)와 세계주도권(world hegemony)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 것이 며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재벌구조(Chaebol Structure)의 진화논리와 기업의 지속번 영 원리를 보다 명쾌하게 이해·설명할 수 있는 일반이론(general theory)을 정립하고 싶 은 강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대단히 어려운 시기인 줄 알면서도 당시 SK 그룹 의 박영호 부회장(지금은 고인이 되었음)에게 연구비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내부적으로 어떤 의사결정과정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SK 경제연구소를 통해서 쾌히 지원해 주었다.
이 지원에 힘입어 필자는 IMF 충격 이후 살아남은 재벌들이 2008년 이후의 글로벌 금 융위기에서도 한국경제를 발전시켜 온 동인과 동력이 무엇이었냐의 관점에서 재벌의 등 장과 그 진화과정과 성공원리, 더 나아가 기업의 지속번영 원리를 보다 일반적으로 이 해·설명할 수 있는 Dynamic Management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동태 경영이론(Dynamic Management Theory, 한양대학교 출판부, 2008)’이라는 제목으로 국 내에서 출간하였고, 뒤이어 이를 더 정교화 한 산업주도권의 이동원리를 담은 “Why Industrial Hegemony Shifts: Needs Evolution and Dynamic Management. Lambert Academic Publishing. 2010)” 을 독일에서 출간하였다.
2011년에 필자는 영국 워릭(Warwick) 대학교 John McGee 교수(전 전략경영학회장)와 Wiley 출판사로부터 Dynamic Management 관점에서 한국 대기업의 진화에 대해 집필 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이 때 집필한 논문이 Wiley 백과사전(2015년 출간)에 “Chaebol Structure: Emergence and Evolution“ 라는 제목으로 실려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 대량경제가 성장기를 맞는 1970년대 초중반의 절묘한 타이밍에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지향 산업화 드라이브 정책과 박태준(POSCO), 이병철(Samsung), 정주영(Hyundai), 구인회(LG), 최종현(SK), 조중훈(Korean AIR) 등을 비롯한 재벌총수의 사업보국과 기술제 일주의의 과감한 투자 결정 그리고 전문경영자들의 책임경영이라는 한국형 기업지배구 조(corporate governance) 위에서 Dynamic Management을 펼치며 대한민국 산업화와 한국경제의 대국화를 이루어 온 재벌들은 2008년 미국 월가붕괴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 기 속에서도 오히려 이를 기회로 선방하며 2024년 현재 한국경제를 세계 5~7위권으로 견인하는 주역이 되었다.
한편 2000년대 들어 AI 시대를 선도할 혁신이론들을 개발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연구비 지원 사업에 힘입어 필자는 자연계 내의 질서를 밝히는데 있어서 원천적으로 오류를 전 제하고 있는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 대신에 자연의 질서를 (예컨대, 물은 항상 아래로 흐르며 협곡에서는 빨라진다든지, 도미노를 통해서 인과관계가 연쇄적으로 이어 지며 최종목적지에 도달한다든지 하는 자연질서를) 원용하는 섭리경영(攝理經營)의 관점 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대국화 원리와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포괄적인 통합 페러다임으 로 Dynamic Management 이론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필자는 2008년 정년 이후에도 이익추구와 관련한 혁신이론과 방법론을 동태 경영의 관점에서 ‘재벌구조의 진화논리(Evolution of Chaebol Structure, 2015)’를 비롯하 여 ‘동태경영 관점(dynamic management view)의 이익추구논리’(2017), ‘직접인과 메커 니즘(direct causal mechanisms of profit): 이익추구의 지배적 패러다임’(2018), ‘사업모델 혁신의 전략개발방법론: business model schema(2019),’ ‘사업모델 통합이론인 comprehensive unified paradigm(2021)’ 등 수 편의 SSCI 논문들을 세계 유수한 경영 저널에 게재하면서 Dynamic Management를 확산시켜 오고 있다. 확산의 일환으로 중 국 북경의 Peking Univ. 와 천진의 Nankai Univ. 경영학 석박사과정의 필수과목으로 2011년부터 가르쳐 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초지능의 AI 시대가 진행되면서 기술혁신은 가속화되고, 현시(顯示)적 요구(explicit needs: 구매력과 구매의향을 동시에 지닌 고객니즈를 말함)는 점점 더 개 별화되면서 ‘기술변화의 가속화와 고객위상의 급상승’ 이라는 특징을 내보이는 시대적 배경에서 (니즈맞춤) 기술과 고객니즈 두 차원 간의 적합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Dynamic Management가 4차 산업혁명에 잘 부합하는 경영 패러다임으로 인지되기 시 작하면서 특히 2020년대 들어 AI 시대에 걸맞는 경영패러다임으로 Dynamic Management가 세계경영학계와 컨설팅업계로부터 평가받으며 혁신경영/혁신전략의 새 로운 장르(genre)로 K-Academy 가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 참고로 지난 40 (1984-2021)여 년간 필자가 독자적으로 정립해온 기술경영/혁신경영 관련 이론들과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i) Firm power theory
(ii) Needs evolution theory
(iii) WTP (willingness to pay) Model
(iv) 기업파워는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경제신문 발간 1995)
(v) 세계산업주도권이동원리 (한국경제신문 발간 1995)
(vi) Why Industrial Hegemony Shifts: Needs Evolution and Dynamic Management
(Lambert Academic Publishing. 2009)
(vii) Chaebol Structure: Emergence and Evolution (Wiley Encyclopedia Management 3rd ed. 2015)
(viii) Technology Analysis & Strategic Management (SSCI) papers:
(1) Dynamic Management View (2017)
(2) Direct Causal Mechanism of Profit (2018)
(3) Business Model Schema (2019)
(4) Comprehensive Unified Paradig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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