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생각 하나가 머무는 시간) 거짓말이 허용되는 조건
〔칼럼〕(생각 하나가 머무는 시간) 거짓말이 허용되는 조건
  • 피은경(pek0501)
    피은경(pek0501)
  • 승인 2019.03.0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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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짓말이 허용되는 조건

친정어머니가 혼자 살기에 적적할까 봐 친정에 자주 들른다. 내가 감기몸살에 걸렸다고 말하며 며칠 동안 가지 않으면 친정어머니는 음식을 만들어 우리집에 온다. 와서 아픈 나를 보고는 체중이 빠진 것 같다면서 마음에 그늘이 진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이젠 나에게 거짓말을 둘러대는 요령이 생겼다. 아프다는 말 대신 할일이 많아서 친정에 갈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럴 때 거짓말은 친정어머니와 나, 두 사람 다 편하게 만든다.

우리 대부분은 진실만을 말해야 옳은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산다. 하지만 때때로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상대방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대체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말을 하는 게 낫다고 여겨질 때 거짓말을 할 것이다.

만약 늘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면 정신적으로 고단한 삶을 살게 될 듯싶다. 그래서 때로 거짓말이 필요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친구가 옷을 새로 사 입고 나와서 “이 옷 어떠니?”라고 묻는데 진실을 말한답시고 “별로 예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해 준다면 그 친구의 기분은 어떨까? 항상 진실만을 말해서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두 사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연히 어느 커피숍에서 친한 친구의 남편이 어떤 여자와 만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니 연인 관계로 보였다. 이때 이 얘기를 그 친구에게 해 줘야 할까 말까? 어떤 것이 그 친구를 위하는 일이 될까? 만약 이 얘기를 해 주지 않는다면 그 친구는 남편에게 속고 사는 바보가 되는 것이고, 불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의 감정이 점점 깊어져서 그 친구가 더 큰 불행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남편이 비밀리에 연애를 하다가 언젠가는 연인 관계를 정리할 것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굳이 그 말을 전해서 그 친구를 불행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또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가 있는데 동생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어머니가 충격과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이 사실을 숨겨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이것은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자신이 어머니라고 가정하고 어떤 답을 원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고 결정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까? 어떤 이는 어머니가 심적 고통을 받더라도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이는 어머니가 심적 고통을 받지 않도록 알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실을 꼭 밝혀야 하는 경우는 언제일까?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당한 경우다. 가령 어느 축구 시합에서 누군가가 반칙을 했고 그 반칙을 공개하지 않으면 상대편 선수들이 피해를 당하는 경우에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또 죽어가는 암 환자에게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에 대해 의사나 가족이 말해 줘야 하는 이유는 그 진실이 암 환자에게 고통을 준다고 할지라도 진실을 말해 주지 않으면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 장발장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배고파하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서 19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석방된다. 그런 장발장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은 미리엘 신부였다. 미리엘 신부는 장발장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 그런데 그런 신부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장발장은 성당의 은그릇을 훔쳐서 도망쳐 버린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경관들에게 잡혀 성당으로 끌려온다. 장발장은 다시 도둑질을 한 죄인이 되고 만 것이다. 이때 장발장에 대해 화를 낼 줄 알았던 미리엘 신부는 뜻밖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 수고들 많소. 그런데 장발장이 아니시오? 당신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져가시라고 드린 물건 가운데 은그릇만 가져가셨기에 왜 은촛대는 안 가져가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부는 벽난로 위에서 은촛대 두 개를 가지고 오더니 장발장에게 내밀었다. 장발장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떨결에 은촛대를 받았다. 이 일에 감동한 장발장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다.

미리엘 신부가 거짓말을 했던 것은 장발장의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이 그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거짓말은 장발장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거짓말이 되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길 때 미리엘 신부의 거짓말을 떠올려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거짓말도 잘하면 처세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다. 어느 누구에게나 불이익이 가지 않는다면 해로운 진실보다 이로운 거짓말이 낫고, 악의의 진실보다 선의의 거짓말이 낫다.

누구든 미리엘 신부를 ‘진실성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거짓말이 허용되는 조건’은 그처럼 ‘진실성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의 거짓말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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