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타인을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네가 오해했구나.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미안해. 이런 말을 주고받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한쪽은 상대방의 말을 잘못 받아들여 기분이 나쁘고 다른 한쪽은 상대방의 오해로 억울한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서로 상대방의 속생각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부간의 갈등도, 부부간의 갈등도 서로 속생각을 몰라서 생겨날 때가 많다.
사십 대인 지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다. 장례식장에 가면서 내 슬픔은 차치하고 무엇보다 큰 슬픔에 잠겨 있을 고인의 어머니를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였다. 혹시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큰 충격으로 병이 나신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고인의 어머니가 문상객들을 환한 웃음으로 대하는 걸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상상 밖의 일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죽은 지인이기에 안타까움이 더 컸고 그래서 나의 상상으로는 자식의 죽음 앞에 어머니가 기절을 하든지 아니면 삶의 의욕을 잃은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 했다. 나는 그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남의 말을 전해 듣고는 알았다. 그 어머니는 자식의 죽음이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간 것이어서 슬픈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것을.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는 지나치게 솔직한 인물이 나온다. 그의 이름은 뫼르소다.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지내던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받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식당에서 태연히 점심을 먹는다. 또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나서 살인의 동기에 대하여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라고 말한다.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느껴서 말한 것이다. 이런 뫼르소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마침내 뫼르소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배심원 여러분,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날에 이 사람은 해수욕을 하고, 부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린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검사의 말뜻을 헤아리면 이러하다.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날에는 해수욕을 해서는 안 되고, 이성과 부정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며, 희극 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려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죽음 뒤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며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뫼르소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게 마땅하다.’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우리가 ‘모든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음’에 근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온 삶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며 생활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타인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임에도 한 가지 잣대로 누군가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또는 도덕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우리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기분을 알 수 없으며, 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의 기분을 알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잠자리가 되어 보아야 하고 개미가 되어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타인의 마음을 알려면 타인과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 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 볼 수 있겠는가.
일례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사람마다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제각각 다른 삶을 살아서다. 눈사람을 재밌게 만들었던 누구에게는 눈이 즐거운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눈사태로 가족을 잃었던 누구에게는 눈이 끔찍한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같은 ‘눈’이지만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타인에게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에 대해 우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울 땐 사람은 각기 다르다고 생각하며 이해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섣불리 단정하여 오해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뫼르소. 그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어떤 면에서는 뫼르소와 닮은 데가 있으리라.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그에 대해서 속단하지 말고 차라리 ‘뫼르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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