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배는 지난 세월에 감사한다는 뜻을 가진 설 명절 고유의 풍속이다. 새해 첫날 웃어른께 인사를 드리고 그간 보살펴주심에 감사드리며 안녕하기를 기원하면서 큰절을 올리는 방식이다. 이의 기원은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예가 최영년의 시집 ‘해동죽지’에 세배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정연학 연구관에 따르면 세뱃돈 풍속은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는 11세기부터 붉은 봉투에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있었고, 일본 역시 17세기부터 세뱃돈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로 비춰볼 때 아마도 개항 이후 일본인과 중국인이 국내 들어와 살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예측된다는 게 정 연구관의 주장이다.
하지만 근래 세뱃돈 지출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8명가량은 설 명절 지출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 지출 부담감’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결과 76.3%가 ‘설 명절 지출에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뱃돈이 구체적으로 얼마씩 지출되고 있기에 부담을 느낀다고 하는 걸까?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성인남녀 12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 설 연휴 예상 경비는 평균 41만4000원으로, 이 중 18만1000원을 세뱃돈으로 쓰겠다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의 함정일까? 예상보다 적은 액수라 놀랍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솔직히 이 정도만 돼도 부담감을 덜 느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5만원짜리 지폐가 등장한 뒤로 적어도 세뱃돈만큼은 만원짜리 지폐가 예전의 천원짜리로 여겨질 만큼 인플레가 심해졌다. 아이들도 이에 적응되어 신사임당이 그려진 지폐가 아니면 코웃음을 칠 정도다.
여기에 입학이나 졸업 등 누군가 통과의례라도 치르게 되면 세뱃돈 지출이 몇 배로 껑충 뛰는 건 예삿일로 빚어지곤 한다. 조카가 많을 경우 기십만 원 정도는 우습게 나간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즐거워야 할 설 명절이 세뱃돈이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풍습 때문에 부담감에 짓눌려 그다지 즐겁게 다가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액수가 중요한 건 아니니 소신껏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비단 체면 때문만은 아니다. 손위 형제나 손아래 형제는 이만큼을 준비해오는데, 나만 생뚱맞게 소신대로 했다가 나중에 무슨 원망을 듣게 될는지는 이를 보지 않고서도 뻔하니 말이다. 세뱃돈 때문에 눈치를 봐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건 다름 아닌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근래 사회 일각에서 유교식 전통문화를 걷어내자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제사 문화도 그렇거니와 명절 때의 각종 격식 등도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이참에 우리의 세배 문화도 좀 바꿔보자.
새해 첫날 웃어른의 안녕을 기원하며 절을 올리는 문화는 일견 바람직해보이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로 지금처럼 현금을 주는 건 그다지 좋은 문화가 아닌 것 같다. 기원을 살펴보더라도 우리만의 전통 문화라기보다는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풍습일 가능성이 농후하니 이참에 이를 바꾸는 게 어떨까. 사회 구성원 10명 중 8명이 부담감을 느낄 정도이고, 게다가 우리만의 전통 문화가 아니라면 굳이 이를 지켜나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참에 세뱃돈 주고받는 풍습을 아예 없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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