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선과 악 사이의 영적 전쟁을 치르는 중
-다윈이즘-마르크시즘-논리실증주의 등 ‘가치의 혼란’도 큰 문제다
-윤 대통령도 ‘하늘에 기도하는 마음’ 가져야 성공
선의의 거짓말(a good lie)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쓰이곤 한다. 사람에 따라서 거짓말은 절대적으로 나쁜 것이기에 선의의 거짓말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거짓으로 인해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 한 거짓말이라 해도 선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말 바꾸기는 했지만 생전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외쳐대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의 말도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자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거짓 허위 조작 등이 넘치는가 보다. 그런데 거짓과 거짓말의 경우뿐만 아니라 선과 악, 의(justice)와 불의(injustice), 미(beauty)와 추함(ugliness) 등의 가치판단(value judging)에서도 서로 상충되는 무수히 많은 주의주장들이 넘치고 있다.
가치판단의 문제는 거짓과 거짓말의 경우뿐만 아니라 동성애, 사형제도, 안락사, 낙태, 피임, 수간, 고려장 등 가치판단이 요구되는 모든 이슈에 대해서 항상 뒤따르는 중대한 문제다. 선의의 거짓(falseness)이 존재한다면 악의(evilness)의 참(truth)도 존재할만하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참이 악의 편에 설 수 없듯이 거짓이 선의 편에 설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거짓과 악을 일삼은 무리들은 아예 거짓과 거짓말을 전략・전술수단으로 활용하여 인간이 지닌 이해력과 판단력은 물론 양심과 인간의 인지 역량까지도 마비시켜가며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의 무리들이 여기저기 존재하고 있다.
15~16세기 과학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중농주의(重農主義) 중상주의(重商主義), 19세기 산업자본주의(産業資本主義), 20세기 금융자본주의(金融資本主義)를 거쳐 21세기 암호화폐(cryptocurrency)시대로 인간의 시공 영역이 가속적으로 확장되어 오는 동안 세상은 선행보다는 악행의 무리들에게 장악되어 왔다고 보여진다.
특히 20세기 중후반부터는 거짓을 사랑하고 악을 일삼은 자라는 의미를 지닌 사탄의 떼거리들이 지옥으로부터 풀려나와 극성을 부리며 21세기에 들어서는 그들이 승리를 구가하는 분위기다. 이는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옳은 것이라고 인정해야한다는 상대주의(relativism)와 각자마다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다원주의(pluralism)가 온 세상을 풍미하고 있는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아래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그른 것도 없으므로 모든 게 다 수용되게 되다보니 그들이 지향하는 상호이해에 의한 공존은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견과 반목과 투쟁과 전쟁의 불가피한 악순환(vicious circle)이 반복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상대주의 다원주의와 더불어 현대를 그럴싸하게 풍미하고 있는 시대사상으로는 본능과 무의식을 강조하는 프로이트주의, 창조론보다는 진화설을 강조하는 다윈주의,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신․지적 노동보다는 육체적 노동을 절대시하는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매사를 경험에 기초한 것이 아니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실증주의들도 한 패거리가 되어 함께 행동하고 있다.
오늘은 바로 그렇게 돌아가는 이 세상을 좀 더 추상도가 높은 철학적 성찰의 차원에서 정리해보려 한다. 지금 무슨 대세인양 통용되고 있는 프로이트주의-다윈이즘에서 논리실증주의-마르크시즘 그리고 인본주의 등이 가져온 폐해와 해악을 차례로 다룰 것이다. 그렇다. 차제에 이런 본격적인 성찰을 진행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무질서와 도덕적 아노미 그리고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총체적인 가치의 혼란 상황을 제대로 뚫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1) 본능(instinct)을 중시하며 인간의 매사를 본능 특히 섹스와 결부시켜 설명하는 프로이트주의에서는 ‘Sex is beautiful’이라고 할 수준으로까지 인간을 타락시키는 논리를 제공해 주면서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은 물론 중・노년층 심지어는 성직자들까지도 타락과 혼란에 빠뜨려 왔으며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들은 인간이 지닌 숭고한 지적기능(intelligence)과 지력 (intellect) 그리고 자유의지(free will)를 부정하며 오직 본능(instinct)만이 중요하다, 는 입장을 펴면서, 특이한 DNA 구조를 지닌 동성애자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연민을 가지고 대해주고 이해해야 한다고까지 항변한다. 현재 전 세계 많은 선진국과 후발국에서도 선거공약으로까지 등장할 정도이니 그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2) 다윈주의의 진화설(evolutionary theory)에 의하면 단세포(單細胞)동물에서부터 진화하여 고등(高等)동물에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화석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흔히 무질서의 정도로 이해되며 변화능력의 역수 1/capacity to change를 말함)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문제의 엔트로피 법칙은 자연계 자체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오직 고(高)수준의 질서에서 저(低)수준의 질서로 바뀌는 한 방향으로만 변해간다고 말한다.
우리가 늙으면 다시 젊어질 수는 없다는 의미로도 함축될 수 있는 엔트로피법칙에 대해 그간 무수히 많은 도전이 있어왔지만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반면 다윈이즘(Darwinism)의 진화설에서 제시했던 근거들은 부실하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설을 주장한 다윈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까지 치켜세우는 무리들이 힘을 쥐고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지금이다.
진화설이 현재 우리의 사고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주며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가 절절히 느껴질 정도다. 어쨌거나 천지창조 때부터 온 우주 안에 확정된(determined) 질서가 있다는 입장에서 볼 때 진화설은 엔트로피법칙과 정반대의 가설임을 알 수 있다.
3)무신과 물질 절대주의를 표방하며 노동혁명을 통한 공산사회건설을 주장해 온 마르크스주의(Marxism)가 여전히 첨예한 문제로 남아있다. 마르크스주의는 1980년대 중후반 급속히 진행된 구(舊)소련연방체제의 붕괴이후 그 허구성과 반(反)역사성이 드러나 사라진 듯 해 보이지만 잠시 내면으로 가라앉아있을 뿐 아직도 전 세계 어디서든 빈국이나 저개발국에서는 물론 부국에서조차도 한(恨)을 지닌 사람들에겐 여전히 호소력 있는 사상으로 호시탐탐 발을 붙이려 하고 있다.
특히 남북 대치관계에 있는 우리나라는 그간 지역 한(恨), 학력 한(恨), 혈연 한(恨)을 지닌 사람들이 적과 내통하여 온갖 거짓과 허위와 날조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권 찬탈을 자행해왔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인 국민투표권을 선거관리위원회가 온갖 형태의 부정투개표를 통해 수 십년간 부정선거를 자행해 온 반국가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는데도 특검을 비롯한 검찰청 사법부의 대법관 헌법재판관들이 무법 초법 불법을 제멋대로 해댄다는 사실이 내 눈에는 안타깝기만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처참하게 파괴시켜온 주범들이며 함량 미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서울 여의도는 대한민국 제일의 악취 쓰레기장으로 유명(notorious)세를 누리며 국민에게는 아랑곳하지 않는 괴물들이 되어버린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는 지적에도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해줄 것이다.
4) 앞에서 언급한 진화설, 마르크시즘이 주는 혼란에 못지 않은 것이 논리실증주의(logical empiricism)의 문제다. 실증주의는 자연의 질서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려는 노력보다는 인간이 만든 과학적 틀과 인간의 오감을 통해서 추론(推論)된 지식만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며, 실증과정에서 전제하고 있는 많은 가정들과 추론 기법들이 지니는 이론적 및 실제적 오류와 한계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가치판단의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무책임하게 가치중립(value-free)을 외치고 있다. 도무지 말이 안된다.
사실 30만 헬츠(herz)인 극초단파의 박쥐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14 미만과 2만 헬츠 이상에서는 태아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인간의 가청영역의 한계도 우리가 잘 알지 않던가? 자외선과 적외선을 감지 못하는 인간의 시각, 냄새에 쉽게 중독되는 인간의 후각, 자극인 매운 것을 맛(taste)으로 받아들이는 인간 미각, 아주 찬 것을 뜨거운 것으로 느끼는 인간 촉각 등의 한계 역시 세상이 다 안다. 그런데도 인간 오감을 통해 얻어진 과학적 추론만을 중시하는 입장은 우리가 쉬 동의하기 어렵다.
5) 과학세계에서는 1920년대 등장한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에서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를 발표하자 이를 비결정론(indeterminism)으로 잘못 파악한 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들에 의해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를 맞았다. 그러자 가치중립(value-free)의 과학을 외치며 악의 편에 서서 지구촌 전체를 사랑 대신에 육욕(肉慾)을 하느님 대신에 돈과 종교다원주의를 펼치며 악의 승리를 돕고 있는 형세가 보편화된 듯 하다.
1960년대 초반(1962-1965년) 같은 타이밍에 물질세계의 중심인 미국과 영적세계의 중심인 바티칸 가톨릭교회가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를 받아들인 결과가 어떠한지를 확연히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수정헌법을 통해 1776년 미국 건국헌법의 기초였던 절대적 청교도주의(puritanism)를 빼버리고 상대적인 도덕 다원주의(moral pluralism)를 수용하였다. 로만 가톨릭교회에서는 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 대신에 종교 일치운동(ecumenism)이라는 미명하에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수용하여 이단(異端)화 되면서, 미국사회와 가톨릭교회가 완전히 사탄의 제물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1965년 이후 60여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범죄율이 8배나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이와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파행적인 현상이 심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 국방 사회 경제 교육 언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례없는 거대한 병리 현상이 연쇄적으로 심화되었다. 그게 우연일까? 미국의 위세는 절대강자의 지위에서 상대적 강자로 약화되었으며 국제경찰로서 미국의 주도권과 달러위상도 대폭 약화되고 파생금융상품의 초 거대국으로 금융핵폭탄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형상이 되었다.
그러나 달러가 아직 기축통화인 덕에 겨우 겨우 이어가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그리고 로마 바티칸 가톨릭은 지난 60여년 사이에 영성 면에서 전례의 신성함과 거룩함에서 그리고 도덕 윤리 면에서 지난 2,000여 년간 지켜져 온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믿음을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교회(One Holy Catholic Apostolic Church)”로 도저히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벗어난 괴물의 이교도 집단이 되어 버렸다. 이런 현상은 작금의 국내 정의구현사제단과 그 아류들의 악함과 끝없는 비방과 저주와 절대가치에 대한 무지 무식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6) 단순 시스템(simple system)이 내보이는 비반복적(a-periodic), 비선형
(non-linear) 행동에 관심을 두는 카오스이론(chaos theory)과 불안정한 역동적 상황에서 복잡시스템(complex system)이 내보이는 단순한 행동 패턴에 관심을 두는 복잡성과학(complexity sciences)이 20세기 중・후반에 등장했다.
자연계 내의 질서는 뉴턴(Newton)이 이야기하듯이 기계적인 확정적 질서가 아니고, 무질서한 것도 내포하고 있는 듯한 주장이 있어 왔었는데 대형 컴퓨터의 도움으로 무질서해 보이는 모든 현상에도 엄존하는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가 존재함을 알게 해주었다. 다만 뉴턴 세계에서의 선형의 확정적 질서가 아니고 비선형의 확정적 질서임을 전해주면서 말이다.
7) 양자역학(量子力學)에서는 원자 레벨 이하에서는 확정적 질서가 아닌 다만 하나의 패턴을 갖기 때문에 거기에서의 관계는 단지 확률로서만 얘기될 수 있다고 전한다. 어떤 현상을 측정하려할 때 원자 레벨 이하에서는 위치와 질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을 전제로 이론화를 지향하는 논리실증주의는 한계를 맞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불안정한 카오스 상태에서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로 새로운 질서가 창발된다는 법칙의 발견과 더불어 양자역학의 가설이 부정되는 실험이 나오면서 자연계 내에는 안정적 상태에서는 선형의 확정적 질서와 불안정한 상태에서의 비선형의 확정적 질서로 이루어져 있음을 믿게끔 해주고 있다.
8) 또한 양성(兩性)에 의한 생명 탄생의 절대적 질서대신에 DNA복제에 의한 단성(單性) 생명 탄생을 이룬 최근의 쾌거를 들어 과학 제일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는 메시지도 전해 주었지만 최근의 정보에 따르면 그렇게 복제된 생명체에는 노화를 늦추는 물질만은 절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동안 생겨난 모든 복제생명체는 노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얼마 동안밖에 살지 못하고 다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지력(intellect)의 소유자이며 자유의지(free will)의 주체인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반하는 타락한 존재로 영원히 살까봐, 생명나무(tree of life)에 이르는 길을 막기 위해 앞뒤로 번쩍거리는 불 칼을 하느님께서 세워 놓으셨다는 창세기(Genesis 3:24)의 말씀이 AI 시대가 심화되면서 절절하게 전달되어 오는 이유는 왜일까?
여전히 인간들이 어찌 행동하든간에 마당 한 구석에 서 있는 감나무가 꽃이 피는가 했더니 어느새 때가 되어 누런 감을 선사하고 겨울을 맞았다가 다시 새로 감꽃이 피는 계절의 변화를 우리는 유심히 지켜본다. 또 오갈 데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먹을 것을 챙겨주자 정착한 지 얼마 지나 주어진 질서대로 새끼를 줄줄이 낳는 것을 보기도 한다.
또 내년 이맘때 태양계에서 지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일 것이며, 일식과 월식의 정확한 날짜와 시간이 언제라는 천문학에서의 예측을 미리 접하면서, 온 만물이 오직 인간만을 제외하곤, 모두가 각기 그 안에 투영되어있는 절대자의 절대의지를 한 치 한 획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따르고 있음도 또한 깨닫게 된다.
9)르네상스 이래 인본주의에 의해 점진적으로 약화되어 오던 신본주의는 바야흐로 21세기 초에 이르러 고도화된 금융자본주의와 암호화폐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완전히 죽어버린 듯이 되어버렸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래서 ‘아무도 하느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는 성서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야 하는 교회에서조차도 돈의 위력으로 인해 참다운 교회를 갈구하는 이들을 당황케 한다.
그 수준은 지금 점점 더 극에 달해 전 세계적 전 우주적 형상이 되어 버린 듯하다. 절대의지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신본주의가 사라진 듯한 시대에는 각사람마다 다르듯이 별별 다양한 많은 주의・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10)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죄와 정의와 심판에 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 잡아주실 것이다.“ (John 16:8)라고, 바이블은 전해준다. 이 메시지는 세상에는 거짓과 잘못된 사조가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며, 이들은 진
리의 편에 설 때라야 바로 잡을 수가 있고, 진리의 편에 서려면 성령을 만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해준다. 그러면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창조주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Trinity)의 제3의 격(persona)이며, 제1격인 성부와 제2격인 성자로부터 발(發)하는 영(靈)으로 진리를 전하며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존재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건 자유의지로 진리의 편에 설 때 비로소 거짓과 허위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 성부께로 나아갈 수 없다.”(John 16:4)라고,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John 8:31-32)라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이는 개인 집단 조직 국가 레벨 어디서든 통하는 예기이지만 국가 레벨에서는 더더욱 유념해야 할 명제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선악의 영적(靈的) 전쟁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거짓의 사탄이 아닌 참으로 전선(全善)하시고 전능(全能)하신 하느님의 편에 서야 한다. 우선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래 쉼 없이 적과 내통하며 국권을 찬탈해 온 반(反)국가 무리들을 대청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주체가 될 인재가 없다.
밑도 끝도 없이 누군가의 주문에 따라 정책 아닌 정책 흉내만 내는 무능의 부정직한 지도자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대청소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오로지 선하고 강한 대한민국을 새로이 개국(開國)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세계평화를 선도할 지도자라야 해 낼 수 있다. 바로 이점을 대한민국호(號)를 책임진 윤석열 대통령에게 새삼 들려드리고 싶다.
“하늘이여! 이 땅에 선(善)하고 강(强)한 정직(正直)한 참인재를 보내주소서!” 오늘도 나는 이런 기도를 하늘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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