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경제 견인차 ‘재벌’의 비밀 아세요?
[칼럼] 한국경제 견인차 ‘재벌’의 비밀 아세요?
  •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6.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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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외국 경제학자 모두가 한국 재벌의 노하우에 관심

-그 누구도 소유-경영의 기막힌 조화 원인을 몰라

-K경제의 역동적 과정은 ‘동태 경영’으로 재해석해야

-반기업심리 헤치며 선전하는 저들에게 돌팔매 대신 애정 가질 때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기 바로 직전인 1944년에 서방국들은 이른바 브레튼우즈(Bretton Woodds) 협정을 통해 금환본위제도와 고정환율제를 채택하였다. 전쟁복구 수요와 전후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로 이어지는 대량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체제의 도입으로 한동안 미국이 절대적 강자로 위상이 강화되었지만 뒤이어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의 재부상으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자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1971년 금 태환을 정지시키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1979년 2차 오일 쇼크가 터지자 글로벌 규모로 초(超)경쟁상황이 격화되고 여기에 디지털혁명이 촉발되면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기술경제(techno-economic)패러다임이 이동하게 되었다. 이에 1980년대 초반 레이건 정부는 이런 환경변화에 적극 적응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주주가치 극대화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때 미국 기업들은 노사관리와 공급사슬(supply chain) 관리 면에서 리스크가 큰 제조업을 외면하고, 대신에 비교적 용이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서비스, 유통업이나 금융업으로 전업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런 추세에서 미국은 1985년을 기점으로 세계 최대채권국에서 최대채무국으로 바뀌게 되었고, 2008년 월 스트리트 붕괴(리만브라더스 사태) 전까지 약 20여 년간, 특히 1997년부터 10여년 간 실물경제는 급속히 왜소화되었다.

같은 기간에 파생금융상품 시장이 급속히 초거대화되는 바람에 실물경제의 왜소화와 금융경제(특히 파생금융)의 초거대화라는 불균형 구조는 물밑에 가려지고 오히려 미국경제가 활황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제조업분야에서 중국과 아시아 4 호랑이(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가 급부상하면서 미국은 세계 최대채권국에서 단숨에 세계 최대채무국으로 전락했다. 이때가 바로 1984-1985년인데 같은 시기에 미소 양극체제 또한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미국 금융산업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필자는 궁금증이 대단히 컸었다.

규제완화 이후 재무분야에서 위험관리라는 미명하에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이라는 신용어가 사용되고 위험을 사고파는 희한한 돈놀이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미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월가(Wall Street)의 새로운 금융세력으로 등장했다.

세계적으로 디지털혁명과 규제완화에 따라 선물, 옵션 등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이 등장하는 대격변기에 한국주택은행이 어떤 전략 행보를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경영전략연구를 당시 필자에게 의뢰하여 왔다. 연구를 마치고 뒤이어 주택은행 사외이사로서 3년간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와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하여 심도 있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세계금융의 주도세력과 그들의 행보에 대해서도 다소나마 눈을 뜨게 되었다.

한편 필자는 1997년에 터진 IMF 외환위기와, 같은 타이밍에 미국의 무역적자 급증과 파생금융상품의 폭증이 맞물려 발생하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급변 현상들이 이후 한국과 미국과 세계금융시장에 어떤 충격을 줄 것인가라는 물음을 갖게 되었다.

먼저 한국의 경우 IMF 사태 이후 30대 재벌의 반(半)이 사라지는 충격과 더불어 환율이 현실화되는 바람에 무역흑자가 엄청난 규모로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때 살아남은 재벌기업들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 년간의 반(反)기업정서 속에서도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한국경제를 대도약(大跳躍)시켰다. 이 같은 위업을 보면서 필자는 재벌구조(Chaebol Structure)의 진화 논리와 기업의 지속번영 원리를 보다 일반적으로 이해·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정립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

세계금융이 거시적 관점에서 어떤 방향의,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며 세계경제에 어떤 충격을 줄 것인가를 다루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재벌주도 경제대국화 성공논리와 원리를 동시에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단히 어려운 시기인 줄 알면서도 당시 SK그룹의 박영호 부회장(지금은 고인이 되었음)에게 연구비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내부적으로 어떤 의사결정과정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SK 경제연구소를 통해서 쾌히 지원해 주었다.

이 지원에 힘입어 필자는 IMF 충격 이후 살아남은 재벌들이 2008년 이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한국경제를 발전시켜 온 동인과 동력이 무엇이었나의 관점에서 재벌의 등장과 그 진화과정과 성공원리, 더 나아가 기업의 지속번영 원리를 보다 일반적으로 이해·설명할 수 있는 ‘동태경영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

이를 ‘동태경영이론(Dynamic Management Theory, 한양대학교 출판부, 2008)’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출간하였고, 뒤이어 이를 더 정교화 한‘Why Industrial Hegemony Shifts(산업주도권의 이동원리, Lambert Academic Publishing, 2010)’을 독일에서 출간하였다.

필자가 2000년대 들어 십수 차례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하여 세계 석학들과 대화할 때마다 자주 접하는 저들의 관심 이슈는 한국의 재벌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 재벌들이 어떻게 그렇게 승승장구하느냐, 어떻게 ‘소유와 경영의 분리’ 대신에 ‘소유와 경영의 조화’가 가능한가, 또 2-3세대로 경영권 상속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뤄지느냐는 것이었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재벌들의 기술개발을 통한 혁신전략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11년에 미국 샌디애고에서 열린 Strategic management Society (SMS, 세계전략경영학회)의 연례회의(Annual Conference)에서 영국 워윅대학교 John McGee 교수(당시 SMS 학회장)와 전략경영의 유효성에 관해 장시간 토론을 통해 기업측면의 경쟁자들간의 경쟁우위에 초점을 집중하는 전략경영의 한계를 지적하며, 시즈(seeds: 기업측면)와 니즈(needs: 고객측면)를 동시에 다루는 다이나믹 매니지먼트(Dynamic Management)을 제안하며, 시즈측면과 니즈측면 둘 간의 적합성 여부가 사업/기업 성과를 좌우한다는 주장을 강조하였다. Dynamic Management는 필자가 세계 최초로 주창한 경영패러다임으로 “고객의 니즈 진화(needs evolution)에 적응하는 혁신경영(innovation management)”으로 정의될 수 있다.

회의가 끝나 귀국 한 후 얼마 지나 영국 와일리(Wiley)출판사로부터 다이나믹 매니지먼트(Dynamic Management)관점에서 한국 재벌기업의 진화에 대해 집필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는데 이는 국내 학자로서는 처음이란다. 이때 집필한 “Chaebol Structure: Emergence and Evolution”라는 제목의 논문이 Wiley Encyclopedia Management 3rd Edition (2015년 출간)에 실려 서유럽국가와 미국 캐나다 중심으로 확산 중이며 특히 후발 선진국들과 개도국들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데, 그 내용의 골자를 잠시 보기로 하자.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1950년대 들어 미국 주도의 대량경제(mass economy)시대가 개화기를 맞았고, 1960년대에는 성장기를 맞았는데, 이 절묘한 시기에 한국의 박정희 정부가 수출주도의 경제개발을 추진하면서 재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포항제철 철강플랜트를 시발로 중화학투자 드라이브를 진행하던 중 1973년과 1979년 양차 오일 쇼크로 오일달러가 중동으로 유입되면서 중동 붐이 일어났고, 이 기회는 재벌들의 성장 기반을 굳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중후반에 촉발되기 시작한 디지털 혁명으로 미국의 제조업이 쇠락하는 시기에 한국의 재벌들은 정부지원에 힘입어 중화학산업 투자를 본격화하였다. 이는 1996년까지 순항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1997년 IMF 사태로 국내 30개 재벌 중 절반 가까이(13개) 파산하는 대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때 환율이 현실화되는 바람에 한국경제는 살아남은 재벌대기업들에 의해 오히려 한 단계 대도약(quantum jump) 하는 호기를 맞게 되었다.

IMF 위기에서 살아남은 재벌들이 한국형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하에서 수출주도 제조업 사업들에 대해 Dynamic Management를 펼치며 승승장구하며 엄청난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란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아닌 ‘소유와 경영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재벌가(財閥家) 중심의 시의적절한 중앙집권식 결단과 전문경영인 중심의 분권식 실행(centralized decision-making and decentralized execution)을 추구하는 접근법을 말한다.

요컨대 한국경제의 대국화는 세계 대량경제시대 개화기 초중반의 절묘한 타이밍에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주도의 산업화 드라이브 정책을 박태준(POSCO), 이병철(Samsung), 정주영(Hyundai), 구인회(LG), 최종현(SK), 조중훈(Korean AIR) 등을 비롯한 재벌총수의 사업보국(事業報國)과 기술제일주의(技術第一主義)의 과감한 투자 결정 그리고 전문경영자들의 책임경영이라는 기업지배구조 위에서 동태경영을 펼쳐온 결실로 이해∙설명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의 기업들 특히 재벌들은 2008년 미국 월가붕괴(Wall Street meltdown)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이를 기회로 선방하며 한국경제를 세계 10위 권내로 견인하는 주역이 된 것이다.”

필자는 2008년 정년 이후에도 이익 추구와 관련한 혁신이론과 방법론을 동태경영의 관점에서 ‘재벌구조의 진화논리(Evolution of Chaebol Structure, 2015)’를 비롯하여‘동태경영 관점(dynamic management view)의 이익추구논리’(2017), ‘직접인과 메커니즘(direct causal mechanisms of profit): 이익추구의 지배적 패러다임’(2018), ‘사업모델혁신의 전략개발방법론: business model schema (2019)’ 그리고 ‘사업모델혁신의 포괄적 통합이론: comprehensive unified paradigm (2021)’등 수 편의 SSCI 논문들을 세계 유수한 경영저널에 게재하고 수차례 세계경영학회에서 발표하면서 Dynamic Management를 확산시켜 오고 있다.

2020년대 들어 “기술혁신이 가속화하고 고객위상이 급부상”하는 AI 시대에 걸맞는 경영패러다임으로 Dynamic Management가 부각되면서, K-pop K-food K-drama K-culture와 같은 한류(Korean Waves) K-Academy가 경영학 분야에서 조만간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로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13925127_Chaebol_Structure) 이를 클릭하면 Wiley Encyclopedia Management 3rd Ed.(2015)에 실린 논문 Chaebol Structure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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