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군에 '조선시대 최초 서양수학 다룬 '주서관견' 등 3천권 수학책 수집가 화제
경남 의령군에 '조선시대 최초 서양수학 다룬 '주서관견' 등 3천권 수학책 수집가 화제
  • 김 욱기자
    김 욱기자
  • 승인 2025.03.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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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구 소장, 1660년 ‘산학계몽’ 등 희귀본 전시
3월 14일 유네스코 지정 '세계 수학의 날'
이병철 회장 수학 교사 이상익 '산술교과서'..."호암, 수학에 비상"
육군소년지원병 체격·호열자 숫자 등 수학책 아픈 역사 담겨
김 소장 "수학 후퇴는 국가의 후퇴...수학교과서 체계적 전시 원해"

경남 의령군에 조선시대부터 2000년까지 400여 년 동안의 수학책 3천권을 모은 수집가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30년간 수학교과서 수집을 위해 전국을 돌며 대부분의 재산을 투자한 '수학교과서연구소' 김영구(66) 소장이 바로 주인공이다.

김 소장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 수학의 날(3월 14일, 원주율 근삿값 3.14에서 착안)'을 맞아 그동안 수집한 수학책을 의령군에 공개했다.

김용규 소장이 3천권의 수학책 전시관에서 '신학계몽'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의령군]
김용규 소장이 3천권의 수학책 전시관에서 '신학계몽'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의령군]

김 소장은 의령군 가례면 자굴산 기슭에서 매실 농장을 운영하며 수학책을 수집한 별난 이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의 비밀 창고에는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에서 6-25전쟁까지,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등 크게 4개 시기로 구분해 수학책이 진열돼 있다.

김 소장은 의령군과 연관된 고서라며 이상익의 '신식 산술교과서(1908)' 수학 교과서를 최초로 꺼내보았다. 이상익은 '헤이그 특사'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친동생으로 ‘근세산술’이란 수학 교과서를 쓰는 등 근대 수학교육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수학자 이상익은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이 중동학교에 다닐 때 수학 담당 교사로 이 회장을 가르친 스승으로 의령군의 인연이 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소장은 "호암은 학창 시절 수학에 비상한 관심과 재능이 있었다는 게 중론"이라며 “호암의 수학적, 과학적 사고가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이끈 기본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오래된 책은 '산학계몽'이다. 1299년 중국 원나라 수학자 주세걸이 쓴 것인데 연구소에는 1660년 산학계몽 목판본이 있다.

조선시대 최초 서양수학을 다룬 '주서관견(1705)' 필사본과 조선시대 널리 사용된 수학책 주서관견(1705)), 우리 정부가 처음으로 펴낸 수학교과서 '산술신서(1900)' 등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책들이 수두룩하다.

수학책에는 민족의 아픈 역사도 엿볼 수 있다.

미군정청 문교부가 펴낸 '초등 셈본(1946)'을 보면 단기 4279년 여름에 호열자(콜레라)가 퍼져 그해 10월 28일 기준 전국에 15,641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11,118명이 사망했다는 통계치가 있다.

미군정청 문교부가 발행한 '초등 셈본'에 호열자(콜레라)에 대한 통계가 기록되어 있다.[의령군]
미군정청 문교부가 발행한 '초등 셈본'에 호열자(콜레라)에 대한 통계가 기록되어 있다.[의령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초등과 산수(1944)'를 보면 만 13세 이상 14세 미만은 육군소년지원병에 지원할 수 있으며 체격은 키 133cm, 몸무게 39kg으로 조선인이 매우 왜소했음을 알 수 있다.

1955년 천연색으로 인쇄된 첫 수학교과서 '산수', 1971년 표준전과, 1980년 정석 예비고사 수학 등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친근한 수학책도 빼곡히 전시돼 있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 수학책의 역사가 모두 여기에 있다고 자부한다"며 “학술 연구와 학생 교육을 위해서 한국수학교과서박물관과 같은 시설이 건립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기 있는 수학책을 연구하려면 역사·문학·일본학 등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고 수십 명의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교육청 등 교육 관련 공공기관이 수학교과서에 관심을 두고 미래 세대를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영구 소장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 수학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수학의 후퇴는 국가의 후퇴와도 같다"며 "의령에 오면 매일매일 수학의 날이 된다. 의령에서 수학의 기쁨을 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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