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근 사무국장 "창원군 웅천면 편에 '학포부락' 존재 하지 않아"
이순신 장군이 1592년 5월 7일(이하 음력) 처녀 출전해 왜선 5척을 상대로 승전을 한 합포해전지가 옛 마산인지 진해구 학개인지를 놓고 진행된 팽팽한 줄다리기를 종지부 찍을 역사적 사료가 발견되어 역사학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합포해전 장소가 일부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원포동 학개 마을이 아니라는 반박불가 수준의 결정적 자료가 발견된 것.
합포해전 지역이 마산이냐 진해냐를 두고 지난 2021년 11월24일 열린 '합포해전 토론회'에서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은 발제를 통해 ‘합포해전지 위지 비정(比定)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합포해전지에 대해 과거 창원부 합포 앞바다로 추정된다"고 주장한바 있다.
반면, 이에 제장명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은 “마산만의 합포는 합포해전지로 볼 수 없다" 그 이유로 “구한말 일본해군의 지도를 보면 웅천땅 합포 지명이 오늘날 원포동 학개마을로 진해인 것을 알 수 있고, 당시 조선과 일본의 수군 전술을 고려하면 진해 학개가 유력하다”고 반박해 합포 해전지가 마산과 진해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는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대표) 조현근 사무국장이 1959년 작성한 대한민국 최초의 '지명조사철'을 확인한 결과, 창원시 진해구 원포동 학개 마을은 아예 마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조선시대에 작성된 거의 모든 고지도에도 기록이 없는 학개 마을은 적어도 1959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 국장은 "일부 연구자들이 합포해전지라고 주장하는 합포라는 부락이 1959년 작성 지명조사철의 경남 창원군 웅천면을 편에 없으며, 원포리에는 두 개의 부락이 있었는데 '원포 부락'과 '수치 부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면서 "원포 부락에는 347명이 94가구에 살았고, 수치 부락에는 252명이 72가구에 살았다고 적혀 있으며, 이 일대에 합포해전지라고 추정할 수 있는 합포(合浦), 합개, 학포(鶴浦), 학개라고 불리는 부락이나 마을은 전혀 보이지 않는 다"고 주장했다.
지명조사철은 1959년 시행된 지명조사사업 과정에서 전국의 모든 읍면동에 대한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공간정보 역사기록물이다. 총 1만 5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로서, 작성에 참여한 인원만 해도 3만 3천 명에 이르렀으며, 건국 이래 처음 이루어진 최대 규모의 공간정보 구축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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