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업은 아주 오랫동안 인류의 이동편이 되었다. 말이나 마차는 가까운 거리에서 매우 효과적이었고, 배는 그보다 먼 거리나 대륙 간의 이동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나 대륙의 위를 훌쩍 날아 자고 일어나면 지구 반대편에 도착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가장 먼 거리를 가장 짧은 거리로 만들어주는 각종 항공편들. 이제 동경이나 낭만이 되다 못해 일상이 되었다.
20세기 초반에는 ‘여객기’라는 개념이 불가능해보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여객노선이 생기긴 했지만 단거리 이동이나 우편물 수송이 대부분이었다. 1950년대에 제트엔진 여객기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제트 여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1970년대 대형 여객기 제작이 가능해지고 장거리 취항이 늘어났다. 종류를 막론하고 어떤 신기술이 상품화되고 처음 시장에 선보일 때에는 대체로 고가의 비용이 책정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적정선으로 내려오게 된다. 항공권 가격도 마찬가지로 저가 노선을 펼치는 항공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부담없는 가격이 가능해졌다. 지금은 개인이 우주여행을 가려면 편도 360억원의 유인우주선이 최소금액이지만 앞으로 저가 우주선이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저가 항공사, 대형 항공사는 법적인 용어는 아니고 서비스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분류하면, 수하물이나 기내식, 기타 기내 서비스 등이 모두 항공권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대형 항공사(FSC, Full Service Carrier)와 서비스 비용을 줄여서 저렴한 가격으로 항공권을 판매하는 저가 항공사(LCC, Low Cost Carrirer)가 있다. 저가 항공사는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추가 금액을 받고 판매한다.
국내 대형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있으며, 저가 항공사는 티웨이항공, 진에어, 에어서울, 에어부산, 제주항공, 이스타 항공, 플라이강원이 있으며 화물운송 항공사는 에어인천이 있으며 소형항공운송 사업자는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 하이에어가 있다(에어포항과 에어필립은 운영을 종료하였다). 저가 항공사는 일반적으로 기존 항공권에 비해 50%~70%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며 비용 절감에 매우 노력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가격을 낮출 수 있을까?
보유 기종의 동일화
여러 기종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은 저가 항공사들에게 큰 부담이다. 우선 새 항공기 기종을 들여올 경우, 그 기종에 알맞는 정비사나 기타 관리자는 물론이고 기장 또한 새로 양성해야한다. 안전관리 규칙이 각 기종별로 다르게 적용되는 것에 대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장기 운용에 따른 유지 비용까지 생각하면, 여러모로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기종을 최대한 줄이거나 단일화 한다.
직접 예약과 발권
고객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 발권하는 서비스를 활용하여 인건비를 줄인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일찍 예약할수록 가격이 저렴한 특징을 보여주어, 최대한 현금을 미리 확보하고 동시에 만석을 유도한다. 또한 전 좌석을 일반석으로 하여 최대한 승객을 많이 태울 수 있게 한다(상대적으로 넓은 비상구열 좌석은 추가 금액으로 더 비싸게 판매한다). 진에어나 외국 항공사 중 플라이두바이, 에어아시아 엑스, 스쿠트 항공 등 일부 항공사는 비즈니스석도 운영하지만 프리미엄 이코노미 수준이다.
기내 서비스의 최소화
저가 항공사가 대형 항공사와 다른 점은 기내 서비스가 최소화되어있다는 점이다. 기내 서비스 대부분은 유료화하고 음료수나 음식 모두 공항 내 음식점 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판매한다.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안 먹으려고 하지만 누군가 컵라면을 주문하는 순간 대부분 따라서 주문하게 되어있다(춥고 밀폐된 기내에서 라면 냄새가 나면 누구라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저가 노선은 예상치 못했던 요소들로 타격을 입게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저가항공사들은 대부분 보유기종을 동일화하는 편이다. 한국 저가 항공사 중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은 세부기종까지 동일하게 737-800 기종을 각각 30대, 19대를 운항하고 있고, 이스타 항공 역시 보잉 737만 18대 운항하고 있다. 세부기종은 약간 다르지만 대체로 737 기종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러한 전략은 회사의 중요한 사업 수단인 여객기의 결함으로 신뢰가 깨지면 문 닫을 각오를 해야하는 위험한 방식인데, 2019년 보잉 737MAX 기종에서 기체 결함이 발견되어, 수많은 저가 항공사들의 도입 계획이 큰 타격을 입었다.
보잉의 협동체 기종인 보잉 737 MAX은 출시된 지 3년만에 똑같은 양상을 보인 사고가 잇달아 2번 발생하면서 기종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해당 기종은 2019년 초순에 전세계에서 운항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보잉 737MAX 생산도 중단”, 2019/12/17, BBC NEWS,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0818083)
게다가 신규 사업자가 확대됨에 따라 과다 경쟁으로 수익성은 급감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한일간 외교갈등이 고조에 달하면서 적자가 발생하였다. 우선 신규 LCC(저가 항공사) 3곳이 올 3월 항공 면허를 취득하면서 LCC 사업자는 기존 6개에서 9개로 늘어났다. 지난 4~5년간 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던 국내 6개 LCC는 2019년 상반기까지 모두 적자를 기록했고 일본 여행 취소가 시작되면서 이는 가속화 되었다.
( "승객이 안탄다" 적자비행 LCC의 위기, 2019/09/02,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90117245997532)
제주항공, 진에어를 비롯한 기존의 6개 저가항공사(티웨이항공,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에어서울) 모두 예외없이 적자를 기록했고 적자 폭 또한 예상보다 컸다고 한다. 실적악화 배경은 늘어난 항공기만큼 수요가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규 노선 공급이 늘었으나 탑승률 부진으로 국제, 국내선 단가가 하락하면서 수익성이 급감했다는 설명이다.
여기까지만도 충분히 힘든 상황이었건만, 최근 코로나19(COVID-19) 확산 사태로 인해 전세계 항공 노선이 축소되거나 비행이 취소되는 사태가 생기는 악재가 겹치면서 항공사들은 사상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노선을 대체하기 위해 중국, 타이완, 싱가포르 노선을 강화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는 더 크게 다가왔다. 각 저가 항공사들은 급여를 추후 지급하거나 3월 휴업을 검토하는 등 연일 비상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에어서울의 경우 임원의 급여는 100% 반납하기로 했으며 이스타 항공은 제주항공에 의해 인수되었다.
(“항공 줄초상, 이스타 에어서울 등, 2020/02/25, 조선비즈,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25/2020022503177.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
(제주항공, 545억원에 이스타항공 인수, 2020/03/02, 파이낸셜뉴스,
https://www.fnnews.com/news/202003021758251686)
90년대에 등장한 저가 항공사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여행의 판도를 바꾸었다. 다양한 여행 상품들이 쏟아져나왔고 너도 나도 여행가기 쉽게 만들었다. 최근 예상치 못한 일들로 어려운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런 시기를 거치고 나서 움츠려있던 만큼 더 멀리, 더 높게 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이주상 칼럼니스트
현 (주)네이처모빌리티 대표이사
KAIST 산업경영학/테크노경영대학원(MBA)
GIST 공학박사
Columbia University Post Doc.
삼성 SDS 책임컨설턴트/삼성테크윈 전략사업팀
한화 테크윈 중동 SI사업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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