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영 칼럼] 집단면역이라는 전체주의
[오순영 칼럼] 집단면역이라는 전체주의
  • 오순영 가정의학과 전문의
    오순영 가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4.09.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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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되살아난 전체주의

집단면역이라는 말이 처음 당국에서 나왔을 때부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집단이 들어간 말치고 좋은 말이 없다. 집단구타, 집단학대, 집단이기심, 집단행동, 집단따돌림, 집단체조, 집단심리 등. 집단은 늘 개인과 대립하는 강자고, 개인은 집단에 예속되어 소외되고 희생되는 약자였다. 역사에 기록된 인류가 저지른 악행들은 전부 집단, 패거리, 민족우월주의, 전체주의로부터 나왔으니, 집단이야말로 인류의 적이라 할 것이다.

전체주의는 공동체, 국가, 이념을 개인보다도 우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을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첫째 대중의 열의를 쉬운 개념으로 묶어서 간단하게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도 표어 화하여 대중을 동원한다.

둘째 스스로의 집단이 유일하며, 특수한 역사적 사명감을 지녔으며, 대중이 '커다란 사건'에 참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셋째 생활의 모든 부분을 통제할 수 있는 유능한 비밀경찰을 운영한다.

넷째 대중이 주도하는 폭력적 사고와 직접 행위가 일상적인 것으로 되며, 정부가 이것을 장려 한다.

한나 아렌트가 열거한 전체주의 특징에서 간단한 해결책, 표어화를 “집단면역”으로, 커다란 사건을 ‘코로나 범유행’으로, 비밀경찰을 “질병관리청”으로, 대중이 주도하는 폭력적 사고를 방역방침을 어긴 사람에 대한 대중의 차별과 멸시로 대치해보면 한국은 영락없는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 결코 꿰어 맞추기가 아니다. 어느새 우리 국민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민주적인 주체가 아니라, 거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지는 도구가 되었으며, 스스로 이러한 도구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필히 개인의 타고난 신체적 특성 예를 들면 면역체계, 과민성, 기저질환 유무와 정서적인 특성, 견해, 그리고 각자 처한 상태가 무시될 수밖에 없다.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 이미 항체가 생겨 맞을 필요가 없는 사람, 자신도 모르는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맞아서는 안 될 사람, 불가피한 사정으로 접종을 못할 사람까지 집단면역을 위해 백신을 맞아야 하며, 맞지 않으면 집단면역이라는 전체의 목적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하여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접종 후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하여도 당국이 계획한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위해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집단면역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집단면역은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관료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 의학계의 저항을 받을 것으로 예상 했었다. 왜냐면 단기간에 수십억 바이알의 백신을 불량품 없이 똑같은 품질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백신이고 간에 항체가 생기지 않는 무 반응자가 10-15% 정도 있고, 바이러스가 인체의 면역을 회피하는 쪽으로 변이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백신을 만드는 초거대 제약회사가 백신 생산을 독점하기 때문에, 각국의 양식 있는 지도자들이 자국의 부를 일개 회사에 헌납하고 자국민의 생사여탈권 까지 맡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집단면역이 양심 있는 학자와 관료에 의해 제지되거나, 국민의 참여가 저조 할 줄 알았다.

2) 백신 사망자 누구의 책임인가?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집단면역을 목표로 21년 2월 말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말았다. 국민적 논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으며, 막대한 예산이 들어감에도 국회의 동의도 없었다. 코로나 공포 속에서 어떤 반대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국민은 백신을 코로나로부터 생명을 구할 구세주로 여겼고, 백신만 맞으면 격리와 감시, 마스크로부터 해방되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 해외여행도 다니게 될 줄 알았다. 당국은 각종 인센티브로 백신 접종을 유도 하였다.

개인의 특성과 선택할 자유를 무시한 집단 접종은 시작부터 혹독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말았다. 매일 하루 4명씩 사망하여 10개월이 지난 현재 1,200명이 사망했고, 영구장애와 사망위험이 있는 중증 부작용 환자는 1만2천명이 발생했고, 크고 작은 부작용 신고 건수가 36만건이 발생하였다. 정식으로 당국에 신고 된 건수만으로 그러하니 신고 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고, 거기에 당국의 축소 심리를 반영하면 최소한 이 숫자의 두 배는 되리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사망자가 거의 코로나 사망자에 육박한다.

우리 국민은 코로나로 사망하고, 백신으로 사망하는 이중의 참상을 겪어야 했다. 백신접종은 그야말로 또 다른 전염병이었다. 백신의 위험성을 당국은 국민에게 조금도 알리지 않았고, 매일 확진자를 발표하여 공포를 조장하고, 백신이 부족하다며 국민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집단접종은 발사된 화살처럼 멈추지 않았다. 매일 사망자가 나와도 조금이라도 먼저 맞기 위해 접종소마다 예약 전화가 폭주하였고 당국은 이런 사실만 언론에 떠들어대어 접종 광풍을 조장하였다.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는 백신 접종 후 사망한 가족의 원통한 사연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집단면역의 허구와 백신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양심 있는 국내외의 의사들과 일부 시민들이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광풍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국은 예상대로 사망과 백신과의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백신 접종 후 사망 한 것 자체가 인과인데 인과성 입증이 되지 않았다거나 조사 중이라거나, 혹은 접종자가 갖고 있던 기저질환 때문이라고 하는 황당하고 모순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이는 총을 무차별 쏘아놓고서 사람이 죽은 것은 총을 쏜 것 때문이 아니라, 총알에 우연히 맞은 잘못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본에서는 모더나 백신을 맞은 남성 두 명이 사망하였는데, 모더나 측에서는 일본 경시청의 수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우연히 죽었다고 발표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사람은 우연으로 죽을 수 없다. 모든 죽음은 필연이므로 우연으로 죽었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죽인자거나 죽음과 관련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백신제조사가 백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80년대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혈액으로 만든 비(非)가열 혈우병치료제가 에이즈바이러스에 오염된 채 혈우병환자에게 투여돼 1800여명이 감염되고 400여명이 사망했다. 이것이 일본 시민단체를 똘똘 뭉치게 한 ‘에이즈 약해(藥害)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후생성 보건의료국장이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행정책임 때문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보건의료국장은 비가열 혈우병치료제의 위험성이 예견됐는데도 이를 폐기 처분하지 않아 혈우병환자를 숨지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프랑스에서도 에이즈 확산 초기인 80년대 초반 4200명이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됐다. 그 중 1348명은 혈우병환자였고 625명이 목숨을 잃었다. 환자들은 85년을 전후한 시기에 국정을 책임졌던 로랑 파비우스 총리와 사회장관, 보건장관을 특별법정에 세웠으며 보건장관은 99년 유죄를 선고받았다.

일본과 프랑스의 예에서 보듯이 사망자가 속출함에도 백신접종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과실치사에 해당하고, 법정에서 다루어져야 할 중대한 범죄다. 필자는 백신으로 사망케 하고 중대한 부작용으로 인생을 망치게 만든 당국자들이 혈우병 치료제 사건과 똑같이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전체주의는 죽음을 몰고 다닌다.

1920년대 이후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파시즘 및 이 사상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상 즉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가 전체주의에 속한다. 그밖에 1917년에 탄생한 러시아 소비에트 정권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1945년 중국 공산당의 마오주의, 베트남의 호찌민 사상, 1982년 북한의 주체사상이 잘 알려진 전체주의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과 대학살은 전부 이들에 의해 일어났다. 사회다윈주의와 우생학도 이런 전체주의를 합리화하는 주요한 과학이 되었다. 그들에 의해서 나약하고 열등한 민족으로 규정된 민족은 없어지는 것이 전체 인류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당시 지식인 뿐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상식이었다.

부랑자, 동성애자, 집시, 그리고 유대인 학살이 자행 되었으며, 범죄자 정신이상자 나병환자는 대를 끊어 유전적으로 영구 제거하기 위해 강제 불임수술을 했고, 영구적으로 격리되기도 하였다.

전체주의가 죽음을 몰고 다니는 것은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전체주의(토탈리타리오’(Totalitario)를 지칭하면서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말로 잘 알 수 있다.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수단으로서 개인의 제거는 그들에게는 매우 당연하고 아무 잘못도 아니기에 가책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악마거나 소시오패스라서가 아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라도 전체주의에 물들면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주체사상 신봉자들인 전체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없었던 많은 죽음이 잇달았다. 죽음의 시작은 세월호 참상이었다. 그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 국민이 한동안 비통함과 우울함에 빠져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절규와 애통함은 전부 문재인과 NL계 주사파 일당이 권력을 잡는 것으로 귀착이 되고 말았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NL계 주사파 운동권 출신이 장관으로 비서관으로 대거 기용되었다. 이후에도 죽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 국회의원, 판사, 검사, 시장, 군인, 청와대 행정관, 법무부 직원, 위안부 피해자 쉼터 소장, 수사관 등이 죽었으나 하나같이 자살로 처리되었다.

코로나 백신 접종 사망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전체주의가 등장한 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한 것과 같은 현상이다. 많은 사람이 죽을수록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전체주의 실현에 도움이 된다. 이성은 마비되고, 국민은 전체에 동화되어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고 통제를 수용하며 서로를 감시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 -설령 그가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라도- 을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범죄자,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거짓뉴스를 만드는 자로 배척하고 당국에 고발하게 된다.

백신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으나 아직도 접종이 중단되지 않고, ‘부스터 샷’이라는 의학적으로 맞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을 기계처럼 만드는 새로운 이름으로 오늘부터 3차 접종을 시작한다고 하니 죽음은 끝나지 않고 계속 될 것이다.

백신 사망자를 한사람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당장 접종을 중단하는 것뿐이지만 그들을 중단 시킬 방법이 없을 뿐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전체주의화 되어 계몽도 어려우니 사실상 방법이 없는 상태다.

4) 살아남은 자의 의무

인간의 뇌가 놀라울 정도로 복잡성을 보이는 이유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사실들을 기억에 등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관찰이 항상 이론의 영향을 받고, 이론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이해타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진실이나 객관적 사실은 전부 상대적이라고 상대주의자들이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정신 능력을 무시하는 자들은 인간을 단지 전체를 위해 봉사하는 노예나, 거대 자본가의 놀음에 돈을 갖다 바치는 ‘봉’, 음흉한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속아 표를 갖다 바치는 ‘봉’ 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자들의 가장 치명적 약점이다. 그들은 정치와 이념에 물들지 않은 깨끗하고 정직한 영혼을 가진 훌륭한 시민들이 이 땅에 적지 않음을 알지 못한다. 언젠가 밝혀질 진실을 위해 사람들이 현상을 제대로 관찰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여 남길 것을 예상하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은 한 시대에 나타나 인구를 다소 감축하고 오명만을 남기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모든 인류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공통적인 전통은 산자가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고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모든 죽음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것을 밝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한다. 죽음을 밝힌 다고해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죽음을 밝혀야 하는 것은 그래야 산자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밝히지 않으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죽음을 밝힘으로서 생명의 존엄함과, 정의, 양심과 죄책감, 삶의 의지가 생기고 이것이 인류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도덕 윤리가 되는 것이다.

평생 처음 겪는 많은 죽음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참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무거운 짐은 죽음의 증거를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는 것, 죽음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죽음을 밝히는 것, 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하는 것, 그리고 죄지은 자를 벌하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칼럼니스트 소개

오순영 원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코로나진실규명의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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