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형 칼럼] 영혼에 대하여
[박계형 칼럼] 영혼에 대하여
  • 박계형 작가
    박계형 작가
  • 승인 2024.08.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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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맞지만 그게 과연 전부일까?

-어머니 돌아가신 뒤 영혼의 존재 확인했던 썩 특별한 체험 몇 개

-소멸된 몸과 별도로 마음은 하늘에 영원함을 믿어

고려대학교 영문과 1학년 때인지, 2학년 때인지, 기억은 분명하지 않다. 국문과 학생들이 영문과 교실로 나를 찾아와서, 자기들이 시화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에게도 참여해 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청하는 바람에, 나는 생전 처음 시를 세 편 써가지고, 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신세계 백화점 4층인가 5층인가에 있는 전시관의 벽에 걸어 놓았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곳을 찾아온 방문객들의 많은 이들이 온통 내가 쓴 시들 앞에 발을 멈추고 서서 움직이질 않는 것이었다. 참으로 뜻밖의 기대하지 못했던 사태였다.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때 내 시의 제목들은 〈출생 이후〉〈사랑〉 그리고 또 하나의 시의 제목은 영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를 낳고 어머니가 죽으셨단다. 그래서 나는 살인자다”란 것이 〈출생 이후>란 시의 첫 귀절이었고, 또 <사랑>이란 제목의 시의 첫 구절은 “누가 누구를 사랑했던 그것은 아름답다고 하자”란 소리였는데 그 다음 이어지던 말들은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소설은 고등학교 때부터 노트장에 끄적여보곤 하였지만 시는 별로 써본 적이 없는 세계였는데 내 시들 앞에 그토록 많은 관람객이 서서 묵묵히 읽으며 감동에 젖어 떠나질 않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돌아봐도 신기한 일이기만 하다. 관람객들의 시선이 내가 쓴 시들로 집중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온통 내 시들 앞에만 모여 떠나지 않자, 같이 시화전에 참여했던 국문학과 남학생 하나가 드디어 불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것이 박계형 개인 한 사람을 위한 시화전이냐!”라고 소리를 지르며 전시관 한쪽 구석에 있는 걸레를 담아둔 통을 발길로 차며 난동을 부렸다. 내가 마치 고의적으로 나의 손님들을 끌어들여 그런 일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그 학생은 착각했던 것 같다. 그 남학생이 나에게 심한 말을 던지며 마구 나를 공격해 오는 바람에 나는 대답도 못하고 걸레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 울었던 일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잊혀지지 않는 일은, 왜 나의 그 서투른 시들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 뒤에 나온 나의 소설들이 대중들 속에 대폭풍우를 일으키고 그렇게나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남겨준 이유에 대해서도, 역시 나는 의아로움을 금할 수가 없다. 신(神)이 나에게만 베풀어주신 어떤 특별한 은혜요,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그 조잡하고 정결치 못한 글들을 감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주셨다라고 표현하기엔 무진장한 죄스러움을 느끼지만, 그런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그토록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 무언가가 존재했다면 그 진원지를 나는 모든 좋은 것들의 진원지인 신에게 밖에 돌릴 수가 없다. 신세계 화랑에서 열렸던 나의 대학 시절의 시화전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는 관람객들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따사한 관심과 총애이고 또 하나는 나에 대한 오해와 질시에 불타 나를 향해 억울하게 폭언을 퍼붓던 남학생이 벌리던 난동이다. 왜 이렇게 우리의 인생 안엔 기쁨만이 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기쁨과 동시에 슬픔과 아픔도 같이 있어야만 하는지, 다시 한번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나와 친했던 국문과 동기 하나가 그 국문과 남학생을 만났는데 “박계형씨 아직도 그렇게 날씬하고 이쁘냐”고 묻더란다. 그렇게 내 앞에서 걸레통을 발로 차며 막말을 퍼붓던 그 학생의 기억 안에 내가 그렇게 날씬하고 이쁜 여학생으로 기억되고 있었다니 내가 싫고 미웠던 건 아니었던가 보다. 그에 대해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여자들에게 이쁘다는 칭찬처럼 반가운 건 없을 거다. 지금의 나를 보는 이들에겐 다소 얼떨떨하게 느껴지겠지만 젊었을 때의 나에겐 이쁘다는 말이 흔히 쏟아지던 소리였다. 내 여동생 중 하나가 수년 전에 나를 알던 언니를 만났더니 대뜸하던 소리가 “계형이 아직도 그렇게 예쁘니?” 라는 질문이더란다. 내가 오랜만에 고려대 여자교우회 동창 모임에 나갔더니 낯이 익은 타과 여학생 하나가 나를 보자마자 “어머머 너도 늙었구나. 너 예뻤던 애 아니니?”라고 소리를 지르던 일도 있었다.

내가 과히 추물이 아닌 외모를 갖게 된 것은 우리 엄마를 닮고 태어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우리 엄마를 닮았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친척들 말에 의하면, 엄마의 젊었을 적 모습은 나보다 훨씬 예뻤었다는 것이다. 늙어서 암에 걸려 병원에 계셨을 때에도 우리 딸 셋이 모두 엄마만 못하다라는 소리를 병원에서 일하는 아줌마로부터 들었다.

병든 엄마를 좀 더 정성스럽게 보살펴드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 아프다. 엄마는 큰 딸인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내가 시집을 가도 나를 따라와 뒷방에서라도 같이 사시겠다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결국 그 꿈을 이루시어, 아버지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사시며 우리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셨다. 그러나 이 부족한 딸은 어머니의 그 극진한 사랑에 제대로 보답을 해드리지 못했다.

어머니가 암이란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데도 의대에 합격한 아들을 데리고 우리 두 부부는 유럽 관광 여행길을 떠났다. 우리가 가고 싶던 여러 명승지를 구경하고 돌아와 보니 어머니의 병세가 아주 많이 나빠져 있었다. 고통 중에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 안에서 내가 불충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좀더 잘해드리지 못했던데 대한 회한이 두고두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 형제들과 함께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 보았는데 숨이 곧 생명이구나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어머니의 숨이 멈추자 곧 주검이 어머니의 전신을 뒤덮었다. 어머니의 전신에서 모든 감각이 멈추고, 생전의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던 어머니로서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전 존재는 순간 완전히 소멸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리 온 세상을 다 뒤져 찾아보아도 이제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던 그 어머니의 모습은 다시는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죽음인 것이다.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 존재하던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 – 이것을 우리는 소멸이라고 부르는데 죽음은 우리 존재의 소멸을 의미한다. 우리 엄마는 이제 없어졌다. 소멸된 것이다. 죽었다. 우리 가족들은 엄마의 시체를 우리가 사놓은 산에 묻어드리고 사라져 버린 엄마를 슬퍼하면서 산에서 내려와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런데 남동생의 꿈에 죽은 엄마가 나타나셨다는 것이었다. 아주 예뻐진 모습으로, 거의 못 알아볼 만큼 그렇게 엄청나게 예뻐진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임엔 틀림없는 엄마가 천국으로 올라가시는데, 특별히 엄마의 다리가 동생의 눈에 뜨이도록 하여 주시더라는 것이었다. 살아계신 엄마의 다리가 워낙 가늘어서 공중목욕탕에 가기를 꺼려하실 정도였는데 천국으로 올라가시는 엄마의 다리를 보니 놀랍게도 그 깡말랐던 다리가 아니고 희고 통통하고 어여뿐 다리이더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엄마의 죽은 몸을 분명 산에 묻었는데, 어떻게 또 하나의 엄마의 몸이 살아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직후 나에게도 엄마가 오신 것이다. 오셔서 나의 귀에 대고 말씀까지 하여주시는 것이었다. 분명히 그것이 우리 엄마의 목소리임을 나는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외국에서 거룩한 신부님이 우리 집에 오시어 미사를 드려주고 계시던 때였다. 사람들이 미사를 드려달라고 주는 돈을 받아 신부님에게 드리려고 미사 지향을 적고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린 것이었다. “그 돈은 그 애들의 돈이니 그 애들을 위한 미사를 바쳐 주어라!”라고 하시는 엄마의 말씀이 들리는 것이었다. 엄마가 그 애들의 돈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저는 즉각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동생들이 우리 집에 와서 엄마에게 용돈으로 드리고 간 돈이 엄마가 죽은 후에도 엄마의 지갑 안에 남아있었는데, 그 돈이 동생들의 돈이니 그 돈을 신부님에게 드려 동생들을 위한 미사를 바쳐달라고 청하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먼저 떠난 내 아들이 하느님 아버지의 품 안에 있다, 라는 소식도 함께 내 귀에 들려주셨다.

그 아들이 죽었을 때 할머니인 우리 어머니가 엄마인 나보다 더 슬퍼하셨는데, 죽어서도 그 마음은 변치 않으시어, 하늘에 오르시자 제일 먼저 우리 아들이 어디 있는가부터 알아보셨던 게 틀림없다. 죽어서도 자식 사랑하는 그 마음, 손자 사랑하는 그 마음은 변치 않으셨음이 분명하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것은 어머니의 육체뿐이고 그 정신과 마음은 소멸된 것이 아니고 다만 육체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 계셨다는 사실이 이토록 선명하게 깨달아질 수가 없고, 영혼의 존재가 이렇게나 확실하게 인식되어질 수가 없다.

어머니는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소멸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육체 안에 영혼이 있고 육체만이 흙으로 가서 묻힌 것이지, 그 영혼은 하늘에 올라가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던 어머니는 하늘에 가서 여전히 살아계신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생전에 예수님을 몹시 사랑하셨고,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마리아님을 공경하셨던 분이셨다.

살아생전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던지 무릎에 쌔까맣게 검은 멍이 들어 있던 분이었고, 암으로 고생하시면서도 “아버지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라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 위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치시던 기도를 계속하시던 것이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어머니가 모든 고통을 끝내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천복을 누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생전에 암으로 고통받으실 때의 그 애처럽던 어머니의 모습들이 내 마음속에서 계속 떠오르며, 내가 좀더 가까이 해드리지 못한 데 대한 후회가 아직도 내 가슴을 저민다.

천국에 계신 나의 어머니! 이 불효 여식을 용서하시고 천주님의 모친이신 성모님과 함께, 이땅에 살고 있는 불쌍한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천주님께 빌어주소서! 제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옵는 예수님! 제 어미를 구원해주신 그 무한한 은혜에 한없이 감사드리며 이 부족한 여인이 영원히 당신의 충성된 종이 될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땅에 엎디어 두 손 모아 간절히 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박계형 (소설가)<br>
박계형 (소설가)

*필자 약력

-1943년 서울 출생

-1965년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1963년 동양방송(TBC) 개국기념 현상소설 당선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선

-현재까지 ‘자유를 향해 나는 새’, ‘정이 가는 발자욱 소리’ 등 40여 종의 소설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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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임 2024-09-16 06:09:17 (108.207.***.***)
50년도 더 전에 박계형님의 머무르고싶었던 순간들을 재밌게 읽었던 사람입니다.
그 책을 어디서 살 수있을까요?
50년전을 생각하며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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