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생활 30년 성찰하고, 제2인생 설계도면 윤곽선 긋는 계기
성공한 모든 이에겐 주변 도움이 반드시 존재 ‘진리’ 깨달아
“자수성가?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제2의 인생은 제가 받은 도움에 보답하고, 도움이 절실한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데 할애 하겠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전, 창원지검 마산지청장에서 부산 고검 발령을 받고 명예퇴직 신청을 한 30년 특수통 베테랑 박용호 검사.
어릴 적 사고로 오른 쪽 엄지발가락 2/3가 절단된 장애를 가진 그는 연휴 시작일인 지난 달 28일 새벽 5시, 백팩 하나 짊어지고 집을 나서 평화통일의 염원이 가득 서린 임진각 망배단을 출발해 12일동안 500km를 걸어 9일 오전 11시 부산 을숙도에 도착했다.
박 검사는 지인이 설치해 준 네비에 의존해 하루 40~50Km를 길 바닥만 보고 뚜벅이로 변신해 무작정 걷는 동안 30년 검사 생활이 마치 어제 인 듯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쳤다고 한다.
“사회 정의 구현을 핑계로 국민이 부여한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억울한 사람을 범죄자로 내몰지는 않았던가?” “나는 왜 남들이 부러워 할 자리 몇 년을 마다하고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500km, 천리도 넘는 길을 한 쪽 엄지 발가락이 거의 없는 장애 몸으로 걸어야 하나...?”
창원지검 특수부장 시절, 경남지역의 알만한 조폭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박 검사가 평화통일 및 윤석열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 전 국민들의 염원인 부산엑스포 유치를 기원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지기 위한 국토종주길에 나선지 10일째 되던 날인 지난 7일 오전 10시 30분경, 창녕을 지나치고 있다는 지인의 제보를 받은 기자는 전날 숙취에도 불구하고 추적에 나서, 계성면사무소 인근 한 편의점에서 검거(?)했다.
조폭들의 저승사자로 불리웠으니 날카로운 인상에 깐깐한 성질일 것이란 상상은 일시에 사리자고 여고생들에게 인기 짱 일듯 한 귀여운 훈남 샘(?)을 마주했다. 그의 배낭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법한 ‘대한민국 평화통일 기원’, ‘부산엑스포 유치 기원’, ‘마음다스리기’ 란 글귀가 새겨진 작은 깃발이 꽂혀져 있었다.
“30년 검사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직접보고 느끼며 체험해보고 싶었다는 소망을 명퇴신청하고 결행하게 된 겁니다”
편의점 야외 탁자에 놓인 노트북 앞에 앉은 그는 마치 피의자가 검사에게 조사를 받는 듯한(?) 묘한 그림이 연출되는 상태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걸어서 500km,,, 일반인들은 엄도도 못 낼 고행을 왜 하게 되었는 가?
-30년 검사생활 내내 우리나라를 직접 느끼고 체험해봐야 겠다는 바람이 늘 있었다. 최근 경남대 통일미래최고위 과정을 수료한 뒤,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특히, 부산엑스포 유치 기원에 나의 작은 염원을 담고 싶었다.
■종주하는 동안 특별하게 남는 기억이 있는 가?
-경북 경산시 점촌의 어느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상주 경천대에 도착할 즈음, 점촌파출소 로부터 돈이 든 지갑을 ‘고래식당’ 주인이 맡겨놓았으니 찾아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지갑 안에는 현금 80만원 가량 들어 있었는 데, 그대로 있었다. 마음이 따듯하고 정직한 분들이 전부인 사회임을 새삼 깨달았다. 식당 주인의 선행은 자전거 종주도로에서 마주친 라이더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종주하는 큰 힘이 되었다.
■느낀 점이 있다면...
-두 가지를 느꼈다. 먼저 욕심을 내려놔라는 말을 늘 듣고 살았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사실 몰랐다. 종주 출발시점엔 이것저것 많은 것을 준비해 배낭에 구겨 넣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무거운 짐임을 몸으로 느끼고 하나 둘씩 버렸더니 홀가분함의 행복을 느꼈다. ‘욕심을 지고 가면 행복을 느끼지도 찾지도 못하게 되는 구나’라는 걸 깨우치는 그 순간, 온 몸이 서늘하고 짜릿해지는 희열과 쾌감을 느꼈다. 57년 살면서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환희 그 자체였다. 또 한가지는 성공한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흙에 묻힌 보석도 채굴해 갈고 닦아 광을 내야 가치를 발하듯,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라는 걸 느꼈다. 12일동안 길 바닥만 보고 걸어 종주한 것도 지인이 깔아준 네비(이정표)가 없었으면 길 잃은 방랑자가 됐을 것이다.
■창원지검 마산지청을 떠나면서 동료들에게 남긴 말이 회자가 되고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아닌데.... 행복해지려면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은 세상 빛을 보는 것을, 농아인들은 듣는 것을, 지체장애인들은 걷고 뛸 수 있는 것을 평생의 소원이다, 여러분은 이 세 가지 모두를 할 수 있으니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더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금 보다 값진 지금(NOW)’에 만족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종주기간동안, 아침 밥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소소한 행복이 하루 50Km 일정을 즐겁게 소화하는 근원이 되었다.(웃음)
■지역정가에는 내년 총선 출마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명예퇴직 신청을 했지만 아진 현직 검사 신분이라 언급할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 이번 종주는 대한민국의 평화통일과 부산엑스코 유치 기원을 위한 것이며, 특히 검사생활 30년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순수한 저의 ‘마음 다스리기’로 봐주면 고맙겠다.
■주변에서 정계 입문을 강력 권유하고 있는 데...
-(미소를 지으며)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500km 국토 종주를 했던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 (박 검사는 출마 여부에 대해선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잠시 동행해준 김성길 창녕장애인복지관장의 일제 전동 휠체어가 보험 가입이 불가함을 인지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함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오른 쪽 엄지 발가락 2/3가 소실된 장애인이라던 데, 사실인가?
-맞다. 어릴 적 사고로 엄지발가락 2/3가 잘려져 신검에서 처음엔 4급(방위)을 받았다가 재심에서 5급 면제를 받았다. 군 법무관 신청을 했지만,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도 ‘불가’ 판정을 받아 한참을 싸운 적도 있었다.
■종주를 마친 소감은?
-12일동안 포기하지 않고 종주 완료한 것은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이다. 자전거길에서 만난 ‘라이더’분들, 지갑을 찾아 준 식당 주인, 힘들 때 서울과 밀양에서 달려와준 지인과 친구들, 고향 이웃집 사람마냥 포근하게 함께 수십km 동행해준 창녕 김성길 장애인복지 관장과 지인들, 부산 을숙도까지 와 축하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검사생활 30년을 성찰하고, 저의 제2인생 설계도면의 윤곽선을 그리게 된 소중한 계기였다.
기자는 박용호 검사가 제2의 인생을 정계진출이나 법률서비스업이나 무엇을 선택하던 존중한다. 다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사회정의 구현이란 막중한 소임을 위임 받고 큰 과 없이 수행해온 것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해달라는 청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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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알렸으니 기자들이 알고
작정하고 인터뷰하는 건데 ...
밀양출마한다 솔직해야지 뭐 그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