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쳇말로 ‘속초-고성 고속도로는 균형발전의 실크로드’ 같은 소리한다.
‘짓기’에 혈안 된 자치단체장의 지역치고 주민 성공 사례가 전무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형건설사들은 모두 서울 소재로 되어 있다. 그럴진대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 어떤 원조가 이루어지겠는가.
속초청년몰 갯배St 화재 현장을 찾아, 직접 피해를 입은 이진규 선주/박현수 대표/고광표 대표와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고 후 45일 간, 시 관련 어느 누구도 찾아온 적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화재 관련하여 김진태 도지사/이병선 속초시장/김시성 강원도의원 세 사람만 방문한 것도 문제 삼을 거리 충분하다만, ‘사고 다음날 일본으로 크루즈 여행을 떠난 자치단체장 및 시의원 휘하 사람들에게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라는, 시민으로서의 자괴감마저 드는 필자였다.
“(우리) 면전에서 파리 잡는 제스처를 보이는 시장/부시장에게 모욕감을 받았”을, 비상대책회의 참석한 청년 피해자들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이고 자치단체장이고 시의원이고 누구든 그/그녀들이 얘기하는 ‘최선의 협조’란 그냥 ‘불가능’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청년몰 대표의 일갈이다.
주지하다시피 6•25 동란 이후, 피란민들 삶의 터전이었던 속초시 마지막 유산일 (구)수협 건물이 사라지는 순간, 속초시의 역사도 함께 소멸된다. 이것이 바로 김철수 전임 속초시장이 굳이 찬/반에 관계없이 청년몰 리모델링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당시 이진규 선주가 자(신의 재)산마저 포기하며 청년몰 완성에 협조한 까닭 역시 김철수 전임 시장의 간곡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속초시민들은 알게 모르게 이 두사람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진규 선주(고향이 이곳 아님에도 남달이 속초 애정 넘치는 분이다)의 말이다. “이 청년몰에는 그 어떤 정치적 계산법 하나 들어있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시간의 차이를 두지 않고, 속초시자치단체의 홍보를 담당하는 자격으로 보아도 무방할 《설악신문》에 ‘속초-고성 고속도로는 균형발전의 실크로드’라는 이병선 속초시장의 기고문이 실렸다.
말문이 막혔다. 자기 집 안방이 불에 전소되었는데 앞마당 한 발자국 건너에 도로를 뚫어 옆동네까지 발전시키자는 황당한 타자철학적 주장이다. 그럼 당장 죽게 생긴 자식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라할까.
이병선 속초시장의 밑그림이었는가. 아니지 않은가. 2022년 선거공약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더구나 ‘영북지역의 경제활성화를 이끌 수 있는 견인차 역할’을, 이병선 본인의 지-지난 자치단체장 역임 때 단 한 번도 수행한 적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라시아 대륙’이니 뭐니 말하는 것은 그냥 언어도단이다
또한, 동해고속도로가 연결되지 않아 고성군의 발달이 여태껏 늦어졌던가. 그렇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윤석열 이전 정부에게 있다는 뜻인가. 논리(추측)의 오류다. 아울러 고성군민들이 자신들의 숙원사업인 동해고속도로 연장을 위한 데몬스트레이션이라도 벌였다는 말인가. 일각에서 ‘그동안 무엇을 하다가 3선 도전을 앞둔 지금에서야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가’라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속초시장의 연계 의도로 불순하게 수용하고 있음을 지각하고 있는가?
이병선 속초시장이 언급한 것처럼 “속초시는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장점에 북방부역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고성의 ’접근성‘이 더해질 때 속초와 고성은 지속가능한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환동해권 교류를 중심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는 중시도시로 발전할 것이다”라면 러시아/북한/중국이라는 특수체제의 국가와 긴밀한 협조를 필요로 할 상황인데, 현 지역구 의원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게다가 속초시는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도 못하다. 무슨 논리로 주장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와 관련된 설계도는 속초 출신 예비역 중장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다.
“속초-고성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뛴다면 ‘영북권 실크로드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장밋빛 청사진은 반드시 수년 내 현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할 만큼 함명준 고성군수와 물밑작업이 이미 이루어졌는가. ‘한마음’이 되어야만 옳을 사회주의를 원하는가.
“인류가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듯이, 속초-고성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실크로드의 주춧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는 말은 대통령이 할 얘기지 자치단제장이 꺼낼 사안은 아니다. 특히 '문명’/‘실크로드’/'주춧돌' 같은 형이상학적 언사는 선거 때 유권자들을 속이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유럽과 아시아가 충돌하면서 생긴 문화 교류의 맥동은 엄청난 것이었다. 간다라 분지와 서부 인도에서 불상은 아폴론 숭배가 확립된 뒤에야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불교도들은 새로운 종교 습속의 성공에 위협을 느끼고 자기들만의 시각적인 형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처음 불상이 나타난 시기뿐만 아니라 그 외양과 디자인에서도 연관성이 확인된다. 그들은 아폴론 상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고, 이는 명백히 그리스의 영향이 미친 효과였다. 그때까지 불교도들은 시각적인 표현을 적극적으로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경쟁이 벌어지면서 그들은 반응하고 빌려오고 혁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이러한 문명의 변화까지 흡수할 자신이 있는가? 역사전공자로서 그저 관련용어의 나열에 집중하는 게 아닌가?
“강원도 영북지역이라는 큰 나무의 ‘속초-고성 고속도로라는 큰 가지’에서 영북 지역의 공동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산업단지, 관광단지, 물류단지 등 수많은 잔가지‘를 키워 무성한 잎이 자라나는 그런 나무”는 없다.
“속초-고성 주민 모두가 행복하고 잘 사는 그런 우리 지역을 꿈꿔보는 건” 상상의 자유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이후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며 전국이 1일 생활권을 바뀌어 국민들의 삶이 풍요로워”졌다지만 작금의 속초-고성 고속도로 건설과 하등의 상관없다.
두 종류의 허구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허구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실체인 허구이고, 두 번째는 실체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상의 것인, 그러한 허구이다. 얼핏 보면 어렵게 들리지만,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다. 우선 허구는 허위와는 다르다. ‘가짜’나 ‘틀린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아직 실현되지 않아 실체가 없다는 의미다. 앞으로 언제고 실현될 수 있는 가능태(可能態, the possible)이거나 혹은 잠재태(潛在態, the virtual)이다. 그것이 현실로 실현되면 실체가 되고, 실현되지 않으면 허구로 남아 있게 된다. 똑같이 현실이 아니지만 어떤 것을 머릿속에서 그냥 만들어 낸 이미지이다.
‘균형발전’은 첫 번째의 허구, 즉 ‘허구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실체’인 허구이다. 모든 균형발전은 그냥 종잇장 위에 적혀 있는 도면이라는 허구에 불과하지만 이 허구에 의해서 실제의 행위들이 규정되고 구성된다. 그러므로 균형발전은 허구적이지만 상상적이지는 않다. 이것은 나의 정신이 꾸며낸 상상적 표상이 아니다. 나름의 권능을 통해 일련의 실제 효과들을 초래하는 도구이다. 균형발전은 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의무라는 실제 행위를 이행하도록 강제하며, 손해라는 또 다른 종류의 실제 효과를 지역민들에게 발생시킨다. 의무니 손해니 하는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강제들은 모두 균형발전이라는 허구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이 막강한 실체적 힘들은 균형발전라는 허구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이 막강한 실체적 힘들은 균형발전이라는 허약한 허구가 없었다면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들이다. 따라서 균형발전은 허구이면서 사실은 허구가 아니라 실체다. 허구적 실체인 것이다.
한편 ‘고속도로’는 ‘균형발전’보다 우리의 감각적 현실에 훨씬 더 가깝다. 균형발전의 조항을 우리는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고속을 이루게 만드는 도로는 손으로 만질 수 있다. 그것의 기원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고속과 도로라는 두 개의 실재적 표상을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 실체고 도로 역시 실체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실체를 합쳐 놓은 결과물은 균형발전보다 훨씬 덜 실재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짓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영동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는’ 완전 다른 실체다. 그냥 하나의 허구가 다른 하나의 실체로 변모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허구들이 비실재적이라는 것, 다시 말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들이 실재적 대상인 양 말하고 있다.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말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가장 허구적이 허구에 의지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언어 관행이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진실을 아는 것과 관련 없이 그저 지껄이고 있을 뿐이다. 그 무지 때문에 고통을 받는 건 그저 가엾은 시민들이다.
시쳇말로 고속도로가 균형발전의 실크로드라는 것은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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