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태 칼럼] 세상을 보는 눈, 가치인가? 이익인가?
가치를 지키면서도 이익을 고려하는 현실적 선택 해야
세계는 언제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해 왔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가? 과거 미국은 민주주의, 자유, 인권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세계를 이끌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제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는 가치(value)가 아니라, 이익(interest)이다.
이 변화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 변화를 어떻게 반면교훈 삼아야 할까? 이러한 변화는 국제질서 속에서 필연적이었을까, 아니면 선택의 결과일까?
2025년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회담은 기대와 달리 파국으로 끝났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휴전이 아니라,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확실한 안전 보장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트럼프는 "전쟁을 끝내야 하며, 협상 없이는 미국이 계속 지원할 수 없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요구하는 러시아의 완전한 철수와 안전 보장이 포함될 수 있을까?
회담은 결렬되었고, 예정되었던 공동 기자회견도 취소되었다. 이는 미국의 외교정책이 더 이상 ‘가치’가 아닌 ‘이익’ 중심으로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한때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유 수호를 위해 전 세계를 무대 삼아 행동했다면, 이제는 ‘이익이 되는가?’라는 전략이 우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가 강화되었으며, 이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일정 부분 유지되고 있다. 이는 전쟁 비용 증가, NATO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논란, 미 국내 여론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전선(frontline)으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조건 지원’에서 ‘조건부 지원’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처음에는 러시아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무기와 재정을 아낌없이 지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익 중심의 접근으로 변화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리튬, 니켈 등 전략적 광물 자원 확보 같은 국익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
미국은 언제부터 ‘세계 경찰’에서 ‘이익 계산자’가 되었을까? 베트남전 패배, 아프가니스탄 철군, NATO에 대한 회의감 등이 이 변화를 가속한 것은 아닐까?
역사를 돌이켜보자. 1953년 한반도에서 벌어진 휴전 협상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남한은 북진 통일을 원했지만, 미국은 소련과 중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휴전을 택했다. 미국은 한반도를 ‘냉전 속 전략적 균형’의 일부로 보았고, 결국 남한의 요구는 무시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남한을 버릴지도 모른다'라는 불안에서 휴전협정을 반대했다. 그는 강경한 반대 여론에서도 미국과 협상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ROK-US Mutual Defense Treaty)’을 이끌어냈다. 이는 미국이 휴전을 선택하면서도 남한의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게 만든 협정이었다. 이로 인해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게 되었고, 이는 한반도의 안보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익’을 고려한 선택을 했고, 한반도는 분단된 채로 남았다.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단순한 휴전이 아닌,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확실한 안보 보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미군 주둔을 보장받은 것처럼, 젤렌스키도 NATO 가입 보장, 유럽 방위군(European Defense Force)의 적극적 개입, 혹은 러시아의 점령지 철수를 강제하는 외교적 확약을 원할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미국 및 유럽 국가들과 개별적인 안보 협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후(戰後)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경제적 지원까지 포함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가치만 강조하면 이상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반면, 이익만 강조하면 신뢰를 잃고 장기적으로 손해를 본다. 그러나 ‘가치 없는 이익’과 ‘이익 없는 가치’는 모두 위험하다. 우리는 가치를 지키면서도 이익을 고려하는 현실적 선택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국익을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치’와 ‘이익’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된다.
1953년, 남한은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미국은 언제나 ‘전략적 이익’이 있는 곳에 개입하고,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면 손을 뗀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한국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우리는 가치 없는 이익을 원하나?”
✔ “우리는 이익 없는 가치를 지킬 수 있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익을 위해 가치를 버리지 않는 선택’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질서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단순히 미국과 우크라이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은 ‘가치’와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도 독립적인 안보 및 경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 ‘우리만의 협상 카드’를 가질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오늘의 선택을 통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전략적 이해관계에서 배제될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