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계엄 선포와 권한 행사, ‘내란죄’ 아니다"
국회가 제시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유는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이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한 것은 내란죄, 직권남용권리행사죄, 특수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것인데 특히 내란죄 인정 여부가 탄핵심판의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내란죄의 사실관계를 중점적으로 따져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다음은 헌법재판소 연구원과 헌법재판소 정보공개심의회 위원, 국회사무처 입법지원위원 및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중앙대 법대 이인호 교수의 글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권한 행사, ‘내란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2024년 12월 14일 오후 7시 24분 국회에서 찬성 204표, 반대 85표, 무효 8표, 기권 3표로 가결됐다. 탄핵에 찬성한 의원이 재적(300명) 3분의 2(200표)를 넘긴 것이다. 76년 헌정사상 3번째로,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8년 만에 다시 불행한 헌정사가 되풀이된 것이다.
이로써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은 정지됐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신 행사하게 됐다. 향후 제기될 여러 헌법적 쟁점이 있지만, 우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 재판인지, 그래서 탄핵 심판에 임하는 헌법재판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밝히고자 한다.
헌재 탄핵 심판, 국민적 신임 관점에서 취약
헌법은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하여 파면(罷免)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한다. 국민이 제정한 헌법에 따른 절차이므로,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을 내리는 것의 정당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국민적 신임(信任)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절차에는 중요한 취약성이 있다.
‘대통령 파면’이란 국민인 주권자가 대통령 선거에서 내린 민주적 의사를 파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주권자의 의사를 파기하는 심판 기관은 적어도 그에 버금가는 민주적 신임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대통령과 헌법재판소는 국민적 신임의 크기가 다르다. 헌법재판소의 민주적 신임은 대통령의 신임보다 매우 약하다. 민주적 신임이 약한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신임을 온전하게 가진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이 헌법 이론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구성 방식은 세계에서 보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방식이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3명 지명, 국회가 3명 선출, 대법원장이 단독으로 3명 지명한다. 이들 중 헌법재판소장만을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가 동의해 임명하기 때문에 온전한 민주적 신임을 받는다. 그러나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단독으로 지명하는 5명의 헌법재판관은 민주적 신임이 취약하다. 특히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의 재판관은 더욱 취약하다. 대법원장은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직접 받지 않고 대통령과 국회의 신임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에서 선출되는 3명은 관행적으로 여야의 각 정파가 나누어서 지명한다. 각 정파에서 지명된 재판관은 온전한 민주적 신임을 받는다고 보기 어렵다.
이렇게 대통령보다 국민적 신임이 약한 헌법재판소가 헌법이 부여한 심판권을 행사해 ‘대통령 파면’이라는 주권적 의사를 파기하는 결정을 내릴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한 법률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을 느껴야 한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과가 갖는 국가적 파장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심판의 헌법적 의미와 무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파면 결정을 내린 2017년의 헌법재판관들은 대통령 탄핵 심판의 헌법적 의미와 그 무게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밝힌 파면 사유는 세 가지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이 갖는 공익실현의무를 위반했고, 특정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했으며, 비밀엄수의무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판단이었다. 법률 조항이라도 이 정도 사유로 쉽게 위헌을 선언하지 않는다.
미국 230년 역사에서 대통령이 탄핵돼 파면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 소추를 당한 제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에 대한 상원의 탄핵 심판에서, 자신의 1표 차이로 탄핵을 기각시킨 상원의원 에드먼드 로스가 왜 탄핵 기각에 표를 던졌는지 그 이유를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대통령이 불충분한 증거와 당파적 이해로 인해 내쫓기게 된다면, 대통령직의 권위는 실추될 것이며, 결국은 입법부의 종속적 기관으로 지위가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대통령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기각결정을 내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 탄핵은 우리의 훌륭한 정치조직을 타락시켜서 의회 내의 당파 독재정치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이 나라가 탄생한 이래 가장 교활한 위험이다. 만약 앤드루 존슨이 비당파적 투표에 의해서 무죄로 방면되지 않았다면, 미국은 당파에 의한 통치의 위험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고, 국가마저 위험 속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존 F. 케네디 저, 배철웅 역, 용기 있는 사람들, 민예사, 2001, 170면에서 인용).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크게 길을 잃을 것이다.
12‧3 비상계엄의 헌법적 의미
12‧3 계엄 이후 야당은 계속해서 내란죄를 주장하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여 결국 관철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헌법에 부합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서부터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12일간 일어난 주요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본다.
3일(화) 밤 10시 27분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2시간 34분 만인 4일(수) 01시 01분에 국회가 재석의원(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이에 국회 경내로 진입했던 계엄군이 퇴각했고,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국민 모두가 간밤에 꿈을 꾼 듯 사태가 일어났다가 종결된 것이다. 모두가 놀라고 당황했다. 4일(수) 오후 야당(191인)은 대통령 탄핵소추안(1차)을 발의했다. 조사한 증거자료가 없었기에 탄핵소추안 마지막에는 ‘참고 자료’라는 제목으로 언론 기사 7건을 첨부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7일(토) 오전 10시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계엄선포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2차 계엄은 없으며 “임기 포함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국민의힘)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 7일(토) 오후 국회는 본회의에 야당의 탄핵소추안을 상정해 제안 설명만 듣고 찬반 토론 없이 투표를 시작했다. 국회의장은 불참한 여당(105인)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하면서 기다리다 투표 시작 후 3시간을 넘겨 투표를 마치는 선언을 했다. 먼저 명패함을 열어 투표수 195표를 확인하고 투표함을 개봉해 가부(可否)를 계산하지 않은 채, 국회의장은 바로 ‘투표 불성립’을 선언했다. 투표수가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200표)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8일(일) 오전 11시 국무총리와 여당(국민의힘) 대표가 공동으로 담화를 발표하고, 대통령 퇴진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외교 포함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8일(일) 검찰은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과 공수처도 서로 경쟁하듯이 내란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헌법적 권한 극한으로 끌어올려 치고받는 정치투쟁
1차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7일(토) 밤 무산된 지 사흘 뒤인 10일 국회는 100일 간의 정기회가 만료됐다. 그러나 거대 야당은 정기회가 끝나자마자 다음 날(11일) 바로 임시회를 열고 회기를 12월 11일부터 17일까지 7일간으로 결정했다. 2차 탄핵 소추를 위한 것이었다. 12일(목) 대통령은 오전에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비상계엄 선포 배경과 목적을 설명했다.
“그 목적은 국민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국가적 위기 원인이 거대 야당에 있다고 했다. 야당(190인)은 12일(목) 2차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제출했고, 13일(금)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2차 탄핵소추안도 대통령의 12일자 대국민담화 내용을 추가한 것 외에는 1차와 동일한 내용으로 위헌·위법의 주장만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는 없다. 이번에는 ‘참고 자료’로 언론 기사 63건을 첨부했다. 그리고 14일(토) 오후 4시 탄핵안을 상정해 찬성 204표로 통과시켰다.
야당은 12‧3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계속해서 내란죄를 주장하며 대통령 탄핵이란 정치 공세를 이어왔다. 국민은 당혹과 놀람 속에서 한편에서는 분노와 한편에서는 좌절을 느끼면서 격정(激情)에 휩쓸렸다.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은 탄핵과 내란죄 주장으로 국민의 격정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 의견은 극명하게 갈려 정치투쟁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가고 있다. 실로 국가적 위기다.
그러나 과거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순간의 격정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와 파면 및 구속으로 이어져 국가적 혼란과 위기를 겪은 2017년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주권자가 선택한 대통령의 직무 정지와 파면은 헌법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실체 없는 내란죄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돼서는 안 된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헌법에 근거해 작금의 정국 혼란에 따른 몇 가지 헌법적 쟁점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첫째, 지금의 상황은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인 야당이 서로의 헌법적 권한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서로 치고받는 난투를 벌이고 있는 정치투쟁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에서 절대적 선(善)은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여야는 자신은 선(善)이고, 상대는 악(惡)이라고 규정하면서 극한으로 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고통을 겪는 것은 그저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시민들의 삶이다. 다행히 시민의식이 높아서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질서 있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다만 대외 신용도와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이 상황을 헌법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순조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 상황을 순조롭게 극복한다면 대한민국의 국가 시스템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둘째, 이번 계엄 발동의 배경 중에는 거대 야당의 입법권 폭주가 있다. 야당은 총선에서 얻은 다수표를 무기 삼아 장관과 검사는 물론 방송통신위원장과 감사원장 등 고위 정부 관료들을 닥치는 대로 탄핵 소추해 직무를 정지했다. 한국 정치사는 물론이고 세계 의정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야당은 법집행기관인 검찰·경찰·감사원, 그리고 대통령실의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 경비를 전액 삭감해 사실상 기능 무력화를 시도했다. 예산의결권은 국회 권한이지만, 정상적 권한 행사로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가적 위기라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리하여 국가원수로서 가진 헌법상 계엄선포권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국회의 반격 카드인 계엄 해제 요구권에 막혀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계엄 카드를 접었다.
계엄권 발동, 헌법 요건 충족 어려워
셋째, 대통령의 계엄권 발동은 헌법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헌법 77조는 “전시(戰時)·사변(事變)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계엄 발동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하위법인 계엄법은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비상계엄 선포 요건으로 하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은 야당의 입법과 예산 폭주로 행정과 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는지 모르지만, 오판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행위는 계엄 권한의 한계를 넘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넷째, 대통령의 계엄 발동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헌적 행위라고 해서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계엄의 요건과 행사에 관한 1차적 판단은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몫이다. 그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다만 그 잘못(위헌성)을 사후적으로 확인해서 권한 행사를 무효로 돌리는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다.
위헌무효라고 해서 그 권한 행위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많은 법률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무효로 선언된다. 위헌적 형법 조항으로 인해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법률을 제정한 행위자를 처벌하지는 않는다. 위헌 확인의 효력은 그 권한 행사의 효력을 배제할 뿐이다. 만일 계엄 발동으로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면, 위헌법률을 제정한 국회의원도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위헌적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그 시정은 효력의 배제이지 처벌이 아니다.
다섯째,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권한 행사는 내란죄(內亂罪)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형법(87조)의 내란죄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그에 준하여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행위”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위헌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권한 행사를 ‘폭동(暴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이 혹여 경찰력을 위법하게 사용했다고 해서 경찰의 무력 사용을 ‘폭동’이라고 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진술한 특전사령관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은 조사 청문회가 아닌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한 발언으로 증인 선서 없이 발언한 것이기 때문에 100% 신뢰할 수 없다. 특히 계엄 시행의 실무 책임자인 특전사령관이 전날 야당 국회의원이 진행하는 유튜브에 출연해 계엄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을 보면 신뢰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확인된 증거자료는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아무튼 그 진술 내용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잘못된 위법한 지시다. 그 지시를 거부한 특전사령관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위법한 지시가 ‘폭동’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내란죄의 폭동은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목적범에서 ‘목적’은 막연한 의도가 아니라 ‘범죄행위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명확한 결과’를 말한다. 이번에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헌법에 따라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계엄군은 계엄 해제 요구가 의결되고 10분 만에 국회에서 퇴각했다. ‘헌법 질서 파괴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검찰을 비롯한 법집행기관들이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을 금지하고 압수수색을 한다는 것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다.
여섯째, 올해 7월 1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6대 3의 의견으로 대통령의 공식적 행위(official acts)를 형사 기소하는 것에 대해 면책특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이번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통령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번복하려는 여러 시도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내려진 것이다. 당시 트럼프의 열렬 지지자들이 물리력을 사용해서 연방의회 의사당을 진입하는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시위자와 경찰관 5명이 사망했으며, 140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한 당시 연방의회는 대선 결과를 인증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폭동으로 인해 회의가 긴급 중단되고 의원들이 대피해야 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내란 선동(incitement of insurrection)’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 소추됐다. 그러나 상원에서 유죄가 부결돼 최종적으로 탄핵되지 않았다. 미국 230년 역사에서 대통령이 탄핵돼 파면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에서 트럼프는 유사한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 진행 중에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주장하면서 기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신청했다. 이 신청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6대 3의 의견으로 대통령의 공식적 행위를 형사 기소하는 것에 대해 면책특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계엄, 헌법이 대통령에게만 부여한 비상대권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이 확인한 법리는 다음 세 가지 개념을 구분했다.
첫째, 대통령의 종국적이고 배타적인 헌법상의 권한 행사(his conclusive and preclusive constitutional authority)는 ‘절대적 면책(absolute immunity)’이다. 둘째,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된 모든 공식적인 행위(all his official acts)는 ‘추정적 면책(presumptive immunity)’이다. 반대하는 측이 추정을 깨뜨릴 수 있다. 셋째,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 없는 ‘비공식적 행위(unofficial acts)’는 면책되지 않는다.
연방대법원은 왜 대통령이 면책돼야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의 공식적 행위를 이유로 대통령을 형사 기소한다면 단순히 그가 가진 증거를 찾는 것에 비할 수 없는 정부의 권한과 기능을 침해할 위험이 훨씬 더 크다. 만약 대통령이 잠재적 기소 위험 아래에서 자신의 직무수행을 두려움 없이 공정하게 행사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면, 그것은 ‘효과적인 정부 기능에 특별한 위험’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그 시행은 비록 그 판단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헌법이 대통령에게만 부여한 비상 대권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몫이다. 그렇다면 위 미 연방대법원의 법리에 비추어 보면, 절대적 면책 대상에 해당한다. 우리의 법집행기관들이 이 점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자칫 국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1980년 5‧17 비상계엄이 내란죄로 처벌된 것과 이번 계엄선포를 같은 논리로 비교하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당시 계엄을 사실상 주도한 군인 세력은 대통령 신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계엄 시행 과정에서 무력이 행사됐고,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이 상황과 이번 대통령의 계엄 발동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무리하게 섞어 넣는 것이다. 언어를 혼란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이번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시행에 설령 판단 오류가 있었고,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행위였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 관한 판단 오류를 처벌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헌법 시스템에 위험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 된다. 향후 국가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예컨대 방어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계엄선포를 주저한다면 더 큰 국가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헌법 사건을 분석할 때 지금의 이 사건만 보아서는 정말 중요한 국익을 놓치게 된다.
여덟째, 대통령이 7일 담화에서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국민의힘)에 일임하겠다”고 한 것은 임기를 포함한 수습 방책을 마련해 달라는 취지로 읽어야 한다. ‘수습책의 일임’인 것이지 ‘국정 운영의 일임’이나 ‘대통령 권한의 위임’이 아니다. 헌법상 그럴 수도 없다. 현재 대통령은 궐위(闕位)나 유고(有故) 상태가 아니다. 현재 누구도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런데 여당 대표가 대통령 퇴진을 언급하고, ‘대통령이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불필요하게 또 다른 헌법 논란을 일으키는 실수다.
아홉째, 1차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국회의장이 표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투표 불성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헌법적 절차를 왜곡하는 것이다. 탄핵소추안이 재적의원 과반수 발의로 표결에 들어갔고, 투표 결과 투표수가 총 195표로 헌법상의 의결 요건인 ‘재적의원 3분의 2(200표)’를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는 ‘안건 부결’인 것이지 ‘투표 불성립’이 아니다.
정치적 공론장으로서 국회 본질 포기
여기서 법리적으로 구분해야 할 두 개념이 있다. ‘의결정족수’와 ‘의결 표수’를 구분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과반수가 발의하고,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의결한다. 여기서 ‘재적의원 3분의 2’는 의결정족수가 아니라 의결 표수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법률안은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헌법 제49조). 여기서 ‘과반수의 출석’이 의결정족수에 해당한다. 만일 과반수가 출석하지 않은 채 표결이 진행됐다면 그때는 표결이 성립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안 부결’이라는 결과를 선언하는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 제92조(일사부재의)는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물론 정기회는 12월 10일(화)로 회기가 종료했다. 이후 야당은 임시회를 열어 새로 발의했기 때문에, 국회법 위반의 문제는 없다. 다만 한 번 부결된 탄핵소추안을 바로 또 회기를 바꿔 다시 의결에 부친다는 것은 탄핵 소추라는 이 중대한 헌법 절차를 국회(야당)가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위헌·위법을 입증하는 증거자료 하나 없이 보도된 언론 기사 몇 개를 참고 자료로 첨부해 대통령의 업무를 정지하는 결정을 하겠다는 것은 정치적 공론장(公論場)으로 기능해야 할 국회의 본질을 포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와 유사한 탄핵 소추 절차를 가진 미국의 사례를 보자. 닉슨 대통령 탄핵 소추의 경우, 1972년 6월에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고 상원의 특별조사위원회가 1973년 2월 7일 그 스캔들에 대한 사실 조사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꼭 1년 후인 1974년 2월 6일 하원은 결의안을 통과시켜 법사위원회(Judiciary Committee)에 탄핵 소추를 위한 충분한 사유(sufficient grounds)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하원 법사위는 1974년 7월 27일 논의된 다섯 가지 소추 사유 중 세 가지 소추 사유(사법방해, 권력남용, 의회 모독)만을 인정해 하원에 보고했다. 요컨대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고 상원의 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한 1년의 사실 조사와 다시 하원의 법사위원회에 의한 6개월에 걸친 소추 사유 확인 및 인정 절차를 거쳤다. 닉슨 대통령은 하원의 소추 의결이 있기 직전인 1974년 8월 9일 사임했다.
미국은 하원의 탄핵 소추가 의결돼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엄중한 조사 절차를 진행해서 의결에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는 탄핵 소추가 되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돼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충격파를 던진다. 대통령의 권한 정지 자체만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이 된다. 대외 신인도는 추락하고 국민경제는 위험에 처하며 국론은 극도로 분열된다. 헌법 이론적으로는 주권자(국민)가 두 기관(대통령과 국회)에게 양분해서 나누어준 민주적 정당성을 국회가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요컨대 국회의장과 야당은 이 엄중한 헌법 절차가 갖는 의미와 충격을 이해하고, 최소 20일, 아니 10일이라도 조사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아무리 급하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어떤 정치적 행위도 타당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정치적 공론장으로서 국회의 본질이 회복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