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한번에 도심 아파트 '아수라장'…위험성 현실화
"전기차 화재 예방 위한 제도적 정비와 기술 개발 필요"
지난 1일 인천 대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전기차 화재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2일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6시 15분께 인천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1층에서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나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그 사이 10살 이하 아동 7명을 비롯한 주민 20명이 연기를 흡입하고 소방관 1명이 어지럼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또 불이 난 차량 주변으로 연소가 확대되며 당시 주차장에 있던 차량 70여대가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됐다.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지하주차장에 있던 흰색 벤츠 차량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다가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는 모습이 담겼다.
화재 직후 매캐한 냄새가 아파트 단지를 뒤덮었고 유독가스를 피해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소방 당국은 낮 최고 기온 32도에 달하는 폭염 속에서 불길을 잡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폐쇄적인 지하주차장 구조상 연기 배출이 원활하지 않고 소방차 진입이 제한돼 발화 지점까지 쉽게 접근할 수 없던 것이다.
게다가 전기차의 경우 일단 불이 나면 일반 내연기관 차량보다 화재 진압이 훨씬 까다롭다는 점도 악재로 이어졌다.
전기차에 탑재된 리튬배터리 화재 시 고온 유지와 함께 불길이 지속되는 '열폭주' 현상이 나타난다. 분말소화기를 사용하더라도 분말이 리튬배터리 내부에 미치지 못하고 냉각 효과도 거의 없다.
실제로 불이 난 아파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경비원과 주민들이 소화기로 초기 진화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결국 소방대원들은 직접 소방 호스를 들고 화점 방향을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방수 작업을 진행해 불을 껐다.
인천소방본부 관계자는 "전기차 화재는 질식소화 덮개나 소화수조를 이용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지만, 진입 자체가 어렵다 보니 신속한 진화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최근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이뤄지며 화재 사고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피해 예방을 위한 법령이나 대응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하 공간 내 전기차 화재는 큰 피해를 야기하지만, 전기차 주차나 충전소 설치 관련 기준이나 규제는 아예 없는 수준"이라며 "화재 예방을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전기차 관련 안전 의식을 제고하는 동시에 리튬배터리 화재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장비나 기술 개발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160건이다.
연도별 화재 건수는 2018년 3건에서 2019년 7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으로 매년 크게 늘었다.
특히 아파트를 비롯한 다중이용시설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2018년 0건에서 지난해 10건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