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철의 유통칼럼(80) TEMU⑦ 한국 시장에서 테무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TEMU⑥에서 피쉬랜드 게임을 통해서 ‘테무는 이용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처음의 생각이 ‘테무는 신뢰할 만한 플랫폼인가?’ 하는 의문으로 바뀌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테무의 메인 카테고리 중 하나인 패스트 패션 의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패스트 패션이라는 용어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동대문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하고 패스트 패션을 소비하고 있었다.
동대문 상권은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청계천 근처에 거주하며 의류를 제작하고 생계를 이어가며 시작된다. 청계천 복개 공사(1958년)로 재래시장이 없어질 위기에 처해지자 당시 상인들은 집단으로 대응하여 서울시로부터 부지를 제공받아 건물을 짓는다. 실향민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들은 평화 통일의 염원을 담아 평화시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현재 평화시장은 전 층이 상점으로 쓰이고 있지만, 1962년 오픈 당시에는 3층에 원재료를 보관한 후 2층에서는 이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고 1층 상점에서는 판매하는 구조였다. 생산과 판매가 단일 건물 안에서 수직적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세스였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위해 1~3층을 하나로 묶어 분양했다. 평화시장이 성장하자 주변에 동신시장(1962), 통일상가(1968), 동화시장(1969)이 차례로 개발되었다.
1970년에 의류원단, 부자재, 혼수용품 등을 취급하는 동대문종합시장이 들어서고, 흥인/덕운시장, 동대문신발상가, 신평화시장, 청평화시장 등이 차례로 들어서며 확장되었지만 남대문 상권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90년대 아트플라자와 디자이너클럽이 들어서고 지방상인들 유치 전략이 성공하면서 분위기 반전이 이루어지고, 1996년 거평프레야, 98년 밀리오레, 두타가 현대식 대형쇼핑몰로 오픈하면서 동대문 상권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인터넷쇼핑 시장이 성장하면서 온/오프라인의 상생의 길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것이 소셜커머스 3사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에 이르자 동대문 상권은 중국의 저가 상품에 밀려 관심밖으로 사라졌다. COVID-19 팬데믹 위기도 그럭저럭 견뎌냈다. 그런데 최근 테무가 국내에 상륙하고, 저가 공세를 펼치자 침체의 늪에 헤어나오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이것이 아날로그 시장이다.
그렇지만 테무의 질주는 오래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테무의 가격을 분석해 보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파격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동대문 시장은 30년 이상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신뢰가 90년대 폭발하고 이후 20년 가까이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반면 테무는 파격적인 가격이라고 소비자를 현혹하지만 쿠팡이나 네이버 등 국내 쇼핑몰에서 가격을 비교해 보면 테무가 그렇게 싸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덤핑 시장을 거쳐 나온 상품은 분명 테무보다 저렴하다.
동대문 시장이 인건비 및 임대료 상승으로 가격이 상승하며 시장의 지배적인 지위를 잃었듯 중국이 지금처럼 빠르게 성장한다면 중국의 저가 상품들도 곧 가격상승으로 지배적인 시장 지위를 빠르게 잃어갈 것이다. 소비자를 현혹하며 빠르게 만들어간 신뢰는 더 빠르게 잃어갈 것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이것이 시장의 생리이다.
그리고 패스트 패션 시장에서 TEMU가 SHEIN의 경쟁력을 따라갈 수 없어 생활용품이나 소형가전 등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권순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