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금융 압박에 "결국 이자이익 내놔야"

이자이익 일정비율 기부·출연 논의 가능성…5대회장 '사전조율' 회의는 취소 관치 논란도 커져…"취약계층 지원, 재정으로 할 일을 금융 사기업에…"

2023-11-15     정욱진

 

오는 16일 금융당국 수장들과 주요 금융지주 회장단의 회동이 임박한 가운데, 어떤 상생 금융 방안을 마련해 제시해야 할지 각 금융그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주 일부 금융그룹이 개별적으로 많게는 이자 감면을 포함해 각 1천억원 규모의 금융 취약계층 지원책을 내놨지만, '연 60조원 이자 이익', '돈 잔치' 등의 비난이 정부와 여당에서 오히려 더 거세지자 금융권은 당국의 눈치를 살피며 추가 대책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가장 주목되는 것은 금융그룹들이 비난의 주요 표적인 이자 이익 가운데 얼마를 기부나 출연 등의 형태로 내놓을지다. 이렇게 마련된 은행권 공동 재원을 소상공인 저금리 대환대출이나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등에 쓰자는 아이디어도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재정으로 할 일을 금융 사기업에 떠넘긴다", "썩 내키지 않는 방산 수출 대출에도 동원한다" 등의 '관치 금융' 논란도 커지고 있다.

◇ 개별대응? 공동대응? 상생방안 놓고 5대 금융그룹 갈팡질팡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김광수 은행연합회 회장은 상생 금융 방안과 관련해 각 금융지주 회장에게 "개별 금융그룹별로 대응하기보다는, 금융 취약계층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새로운 내용을 마련해 은행권 공동으로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5대 금융지주 회장은 당초 13일 김 회장과 함께 비공개 간담회 형식으로 만나 16일 당국과의 회동에 앞서 적절한 상생 금융 아이디어를 미리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후 "사전에 지원 규모 등을 조율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제기되면서 모임을 불과 이틀 앞두고 돌연 해당 일정이 잠정적으로 취소됐다.

현재 정부의 압박 속에 무엇을 더 내놔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금융권의 처지를 그대로 드러낸 해프닝이다.

◇ 하나·신한 1천억 지원안에도…"그런 정도로는 안되지 않겠나"

올해 초에 이어 다시 이달 초 '(은행의) 종노릇' 등의 표현과 함께 정부의 은행 때리기가 시작되자, 앞서 3일 하나은행은 발 빠르게 소상공인·자영업자 30만명에 대한 1천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일정 기간 약 11만명이 납부한 이자 가운데 약 665억원을 '캐시백' 형태로 돌려주는 방안이 핵심이다.

신한금융그룹도 6일 약 1천억원 규모의 취약 금융 계층(소상공인·자영업자·청년) 지원 방안을 내놨다. 현재 시행 중인 소상공인 이자 감면·수수료 면제 등 상생 금융 지원 프로그램의 기한을 1년 연장하고 대상을 늘리는데 610억원, 소상공인·청년 금융 부담 완화 부문에 440억원을 새로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6일 "올해 은행권 이자 이익이 60조원으로, 역대 최고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이 반도체나 자동차만큼 다양한 혁신을 해서 60조원의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은행 산업에 계신 분들도 현실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7일 "은행이 금리 쪽으로만 수익을 내니 서민 고통과 대비해 사회적 기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고 횡재세도 그 맥락"이라며 "일단 은행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신한금융의 상생 방안에 대해서는 "제 판단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 공감대를 만족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16일 논의될 상생 방안과 관련해 "(하나·신한의 방안) 그런 정도로는 안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 이자이익으로 재단출연·기부 등 아이디어 짜내기

이런 발언들로 미뤄, 금융권에서는 "은행별 1천억원 정도 규모의 이자 감면 등 기존 프로그램으로는 은행 때리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분석이 퍼졌다.

당초 6일 또는 7일 상생 금융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었던 KB금융그룹이 발표를 잠정 보류한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우리·NH농협금융그룹도 서둘러 대책을 공개하기보다는 정부 요구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60조원 이자 이익 등이 끊임없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결국 문제의 초점인 이자 이익을 어떤 형태로든 내놔야, 적어도 하나·신한의 1천억원보다는 더 내놔야 이 사태가 진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각 금융그룹이 코로나19 이후 벌어들인 이자 이익의 일정 비율을 기부나 출연 형태로 내놓고, 이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대환(갈아타기)해주거나 일부를 탕감해주고, 전세 사기 피해자 대상 금융지원 등에 쓰자는 아이디어들도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생명보험업계가 사회공헌재단을 만들어 기부금을 모아 사회공헌활동을 하는데, 처음에 보험사들이 보험 가입자 돈으로 상장해 이익을 얻는 문제 때문에 만든 것이라 성격은 조금 다르다"며 "하지만 은행권도 그런 비슷한 형태를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자 감면 등으로 이익을 간접적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이자 이익을 직접적으로 떼어 내놓는 데 대한 여러 논란도 있다.

우선 현재 은행권이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출연 또는 기부하는 통로가 많은데, 증액을 하면 되지 별개의 재단이나 기금을 또 만들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 있다. 예를 들어 은행권은 2012∼2025년 청년창업재단(디캠프)과 관련해 설립·운영 지원금(1천750억원)과 펀드 출연금(6천700억원)을 내놨고, 서민금융진흥원·신용회복위원회·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에 취약계층 대출과 보증 재원으로서 약 7천억원을 이미 출연했거나 할 예정이다.

아울러 은행연합회 20여개 회원기관(은행·보증기금·한국주택금융공사)은 새희망홀씨대출 등 금융지원과는 별개로 ▲ 2019년 1조1천59억원 ▲ 2020년 1조929억원 ▲ 2021년 1조617억원 ▲ 2022년 1조2천380억원 등 4년 연속 1조원 이상을 사회공헌사업에 썼다.

이익 축소로 배당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주주들도 설득해야 하고, 미래 경기·금융 위기에 대비한 적정 수준의 충당금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따져봐야 한다.

◇ "폴란드 방산 수출 지원 대출, 꺼려지지만 협조했는데…"

정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질수록,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금융 간섭이 너무 심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은행이나 금융기관들은 스스로 대출자산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라도 고금리 시대에 부담이 커진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위해 대출 원금이나 이자 상환을 연장 또는 유예해주거나 일정 부분 금리를 낮춰주는 등의 연착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나머지 부분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은 재정 정책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재정으로 지원할 일의 상당 부분을 왜 금융 사기업에 떠넘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5대 은행의 폴란드 방위산업 수출 계약 관련 대출 사례처럼 아쉬울 때는 정부가 여러 가지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대중 앞에서는 금융사들을 악덕기업으로 몰아붙이는 이중성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폴란드 방산 수출 관련 대출 지원을 준비하는 실무진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실 폴란드의 국가 신용등급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거 비슷한 사례로 러시아에 대출을 해줬다가 회수가 매우 어려웠던 기억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며 "따라서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이) 좀 꺼려지는 게 사실이었지만, 국방부 논의 과정에서 최대한 대출이 성사되는 쪽으로 협조했다"고 전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현재 폴란드 방위산업 수출 2차 계약에 공동대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약 27억달러(약 3조5천억원)를 우선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민간 지원이 필요한 금액 약 82억달러(약 10조8천억원)에 이르는 만큼 추가로 5대 은행이 더 나눠 맡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