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화물연대파업 "원칙대응으로 무력화...백기투항 받아내"

"적당히 눈치보다 타협하는 일 없다" 자격정지·유가보조금 제외 카드…생계압박 커지자 코너몰린 화물연대

2022-12-09     정성남 기자
9일

[정성남 기자]윤석열 대통령의 법과 원칙이라는 승부수가 통했다.

화물연대가 15일 만에 파업을 철회하고 사실상 빈손으로 현장에 복귀한 데는 '원칙을 고수한다'는 기조로 예상보다 수위를 높인 정부의 강경 대응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9일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파업 초기부터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 '타협 없는 엄정 대응'을 앞세워 강도를 높여갔다.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 발동에 이어 유가보조금 지급 제외 카드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검토 방침이 잇따라 나왔다.

안전운임제 3년 연장마저 없던 일이 될 위기에 처하자 화물연대는 결국 파업 철회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에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각오가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제 임기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히하게 세울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 만큼 고질적 병폐를 하나하나 바로잡아가는 작업이 본격화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처음부터 "협상은 없다"는 정부

화물연대는 지난 6월에도 8일간(6월 7일∼14일) 파업을 진행했다.

이번 파업과 다른 점은 당시엔 정부와의 '협상'이 있었다는 점이다. 파업 철회 결정이 정부와 화물연대의 5차례 공식 협상 끝에 나왔다.

타결이 이뤄진 5차 협상은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를 찾아가 "오늘 밤에라도 대화하자"고 발언한 뒤 시작됐다.

이후 다섯 달 만에 화물연대가 2차 파업을 벌이자 정부 대응은 180도 달라졌다. "협상이라는 것은 없다"며 용어에서부터 선을 그었다.

국토부는 화물연대와 지난달 28일과 30일 두 차례 마주 앉았지만 단순 '면담'이라고 선을 그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대화는 40분 만에 끝났다. 원희룡 장관은 "이런 식의 대화는 안 하는 것이 낫다"며 아예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김태영 화물연대 수석부위원장은 "진정성 있는 협상안을 갖고 나갔으나 협상이 불가하다는 정부의 이야기에 대화를 더 이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원칙론 고수한 정부...법과 원칙 따른 엄정 대응"

화물연대의 앞서 6월 파업 종료 이후 일각에선 '정부가 일방적으로 양보했다', '백기투항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노사관계에 정부가 개입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으나, 시간이 갈수록 산업계 피해가 커지자 결국 정부가 나서 사태를 봉합했다.

화물연대의 박연수 정책기획실장은 지난 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에 출석해 "6월 총파업 교섭 때 국토부가 실제로 백기투항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이후 19년 만에 화물연대가 한 해 두 차례 파업을 벌이자 윤 대통령은 초반부터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 기조를 고수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화물차 기사들에 대한 쇠구슬 투척 등 폭력 행위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정부는 '안전운임제 일몰을 3년 연장하되 품목 확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세운 뒤 물러서지 않았다.

원희룡 장관은 "노조가 파업으로 힘을 과시하면 정부는 적당히 눈치 보다가 타협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며 "불법과 억지, 비상식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화물연대 파업은 '윤석열 정부를 흔들기 위한 정치파업'으로 규정했고 이들의 파업 기간이 열흘을 넘어서자 정부 대응은 더 강경해졌다.

또 당근이 아닌 채찍을 가한 정부의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제안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며 '선복귀 후대화' 원칙을 내세웠다. 더불어 파업을 철회하더라도 화물연대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점도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화물연대가 정부·여당의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제안도 거절하며 파업부터 강행해 국민 경제에 수조 원대 손실을 입힌 것 아니냐"며 "일단 '머리띠부터 둘러매자'는 그릇된 관행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파업 첫날부터 업무개시명령 발동 예고

총파업 과정에서 정부는 가용한 모든 행정 조치를 동원했다.

처음부터 강경 기조사 분명했던 정부는 헌정사상 최초의 화물운송 분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파업 첫날부터 예고됐다. 

정부는 2000년(의약분업), 2014년(원격의료반대), 2020년(전공의파업) 등 세 차례 의사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적이 있지만, 화물차주들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은 한 차례도 없었다.

시멘트 분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은 파업 닷새째 발동됐다.

윤 대통령이 직접 업무개시명령 심의·의결을 위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정부는 이어 운송을 거부하는 화물차주들에겐 1년간 유가보조금을 끊고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대상에서도 제외하겠다고 압박했다.

기업들이 화물연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계속해서 업무개시명령 발동 분야는 철강·석유화학으로 확대했는데 업무개시명령 발동 이후 비조합원뿐 아니라 조합원 일부도 업무에 복귀하면서 물동량이 빠르게 회복되자 파업 동력은 떨어졌다.

파업으로 일을 못 해 안 그래도 생계가 어려운데 업무개시명령 불이행으로 30일 운행정지 처분을 받고 유가보조금까지 끊길 수 있다는 경제적 압박이 이탈을 불러왔다.

정부·여당이 안전운임제를 아예 없애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더불어민주당마저 일몰 시한 3년 연장안을 받아들이면서 화물연대로선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와 운수 사업자가 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다. 최저임금제처럼 수출입 컨테이너나 시멘트 화물 등을 운송하는 차량에 지급하는 일종의 최저임금을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