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작은 섬으로 가고 싶다.
2019-09-19 송이든
3일이라? 그래 3일이면 이 디지털 문명을 떠나 자연에 나를 놓아두어도 좋겠다.
작은 섬이면 좋겠다. 텐트 하나 준비해서 떠나도 되겠다. 바다가 보이는 평지에 텐트를 치고 휴대폰 없는 삶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가끔 상상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현실화시키기가 녹록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도 살지 않는, 종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도 인기척 하나 느낄 수 없는 무인도는 싫다.
자연경관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마저 느낄 수 없는 삭막함을 즐기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가 태어난 곳은 전라도에 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 그 섬이 작게 보이는 것이지, 어려서는 작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도 작은 배가 이동수단이고, 지금은 열 가구 남짓 살려나. 그것도 안 되려나?
초등학생일 때 그곳에 간 적이 있다. 바다가 에워싼 작은 섬.
항구라고 하기도 민망한 곳에 몇 척의 배들이 있고, 몇 채 되지도 않는 가구, 그리고 평지가 아닌 비탈길에 비스듬히 있는 밭들. 그 밭을 걸어 산을 넘으면 바위들이 많은 바다와 만난다.
종일 산과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산에서 나는 열매를 모자에 담아서 먹고, 바닷가 바위틈에 앉아 게나 고동 등을 잡았다.
작은 섬이라 산 중턱을 넘어 바다로 내려오는 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고, 바다 쪽에서는 마을이 보이지도 않았다. 산이 방어막 역할을 했다.
산이 바닷바람을 다 막아주듯 에워싸고 있었다.
깎아 오르는 듯한 산 중턱에는 마을 사람들이 일궈놓은 밭농사의 결실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고, 잘 익은 옥수수와 잘 자란 무가 지면 위로 솟아있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비탈길에는 곡식 될 만한 것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점심을 안 먹고도 이것저것 입에 넣으려고 하면 주위에 널려 있었다.
바다 근처에는 깊은 동굴은 아니지만 자그마한 동굴 형태의 바위틈들이 많았다. 바위틈에다 나뭇가지를 끌어 모아다 불을 피워 밭에서 깨온 고구마를 굽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불에 넣었다. 나무에서 딴 열매를 먹으면서 즐거웠다.
그곳이라면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파도 소리를 듣고 3일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자연으로부터 얻고, 명상하며 내 혼탁한 정신을 다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이 아니면 바다에, 바다가 아니면 산에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아버지도 이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주 작은 곳이라 답답하기도 했겠지만 3일이라면 충분히 자연인 체험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어려서 여기서는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슈퍼도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로지 바다에서 잡은 고기와 미역, 고동과 땅에서 나는 곡식들과 산에서 나는 나물, 나무에서 자란 열매로 한때를 보냈다. 엄마가 챙겨준 돈을 한 푼도 쓸 환경이 제공되지 않았다. 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물론 잠시라면 말이다. 그 섬은 아직도 자급자족해야 작은 세상일 것 같다. 아직도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닐까. 인터넷이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이지 않을까. 전화나 전기가 들어서기는 했지만, 아직 와이파이가 들어가지 않은, 도심 속 세상과는 거리가 먼 환경이라고.
그곳이 어찌 변했는지 나는 지금 알 길이 없다. 지난 과거를 끄집어 올려 생각해볼 따름이다.
깊은 산 속은 무서울 것 같다. 자연 속 삶이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기에, 자연인으로 살고 싶다 하여 자연 속 삶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는 걸 알기에
문명을 충분히 만끽하며 산 자들이 자연으로 들어가 살기는 쉽지 않다. 잠시 낭만을 누린다고 하지만 그 낭만은 하루를 못 넘긴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하고 싶은 것이다. 3일이라면 과거 속 그 작은 섬이면 좋겠다. 아버지가 답답해서 떠나오고 싶은 곳이기도 했고, 또 그리워 한 곳이기도 한 그곳에서 3일, 고구마만 구워 먹어도 ,고동이나 게를 잡아 끓여 먹을 수만 있어도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그 섬으로 가고 싶다.